정부가 9일 발표한 부동산대책 중에는 내용과는 별도로 한 고위 공직자의 이름이 눈길을 끌었다. 새롭게 정부의 부동산 특별대책반의 반장을 맡게 된 박병원 재정경제부 제1차관이다.
그의 기용은 청와대가 쥐락펴락했던 부동산 정책의 주도권이 권오규 경제부총리-박 차관으로 이어지는 재정경제부로 이동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 차관은 세금폭탄과 대출규제로 집값을 누르려 했던 청와대의 수요억제파와 달리 수요ㆍ공급 원리에 따라 부족한 양질의 주택을 더 늘려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대표적인 공급확대파여서 향후 부동산 정책 방향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박 차관은 2003년 재경부 경제정책국장과 차관보로 있으면서 당시 발표를 앞두고 있던 ‘10ㆍ29부동산대책’협의 테이블에서 갑자기 배제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유는 당시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고 백지화된 ‘판교 학원단지 조성’ 등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는 판교 등 신도시 예정지에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를 설립하고 사설학원을 유치해 서울 강남의 수요를 흡수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재경부와 건설교통부는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다, “사교육을 부추기는 골 빈 정책”이라는 교육부와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특히 강남의 집값 급등은 교육여건 등을 보고 찾아오는 실수요자보다는 부동산 놀음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투기꾼들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으면서 그의 공급위주 부동산정책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후 김수현 현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 김병준 정책기획위원장 등 청와대 정책라인 주도로 투기를 잡기 위한 보유세ㆍ양도세 강화 등 조세정책이 부동산 정책의 큰 방향이 됐다. 재경부는 청와대에 부동산 정책의 주도권을 뺏긴 채 국장급이 단장인 실무단만 꾸려진 형태로 전락했다.
이번에 청와대가 부동산 정책의 주도권을 재경부에 넘겨준 것은 그만큼 현재의 상황이 급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금강화 등의 정책이 단기간에 그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고, 조세정책에 있어서는 더 이상 내밀 카드가 없는 상황이다. 성남 민심을 달래는 것은 주택공급을 늘리는 것뿐이라는 공감대가 생긴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청와대가 내놓는 대책에 맞춰 손발이 되는데 급급했던 재경부의 역할이 ‘두뇌’의 역할로 급부상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의 본산은 건설교통부이지만 신도시 발언 파문으로 추병직 장관이 국민적 신뢰를 완전히 상실한 반면 재경부에는 청와대의 신임이 두터운 권 경제부총리는 부처간 최종 조정역할을 맡게 됐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정책 주도권을 재경부로 넘긴 것은 그동안 청와대가 앞장서서 추진해온 수요억제책이 실패한 것을 자인한 셈”이라며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를 직접 챙기고 있는 만큼 재경부의 공급확대론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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