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국 중립내각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 논란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여야가 서로 다른 개념을 갖고 자기 얘기만 하며 상대방을 공격하는 이른바 ‘사오정 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10일 한나라당이 중립내각 논의를 일축한 것에 대해 거세게 비난했다. 김근태 의장은 “바로 그저께(8일) 중립적 관리내각을 주장해 논쟁을 촉발시킨 한나라당이 어제(9일)는 중립내각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과연 무엇이 진심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은 중립내각 구성은 요구하되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장영달 의원도 “한나라당은 본인들이 요구했던 중립내각에 적극 참여해 국가가 안정적으로 발전하도록 여야가 같이 논의하고 협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고 말했다.
우리당의 이 같은 비난은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8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말한 ‘중립적 관리형 내각’을 거국내각으로 간주한데 따른 것이다. 즉, 야당 인사 또는 추천인사도 내각에 참여하는 형태를 상정한 것이다. 장 의원이 이날 “대통령의 권력의 반을 내놓았다”고 한 것도 그래서다. 이는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과도 맥이 닿는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가 거국 중립내각 논의의 전제조건으로 원만한 국회 운영을 내세운 것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한나라당이 내각에 참여할 생각이 있다면 쟁점 법안 처리에 협력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논리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거국내각을 말한 게 아니었다. 한나라당 요구는 정치색을 뺀 중립적 인사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그야말로 중립내각을 구성하는 것이다. 현 내각에 있는 여당 인사를 내보내라는 뜻이자, 궁극적으로는 노 대통령이 탈당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내년 대선이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날 “여권이 무슨 거래를 하자는 것이냐”며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코드인사로 채워진 내각으로는 국정위기를 타개할 수 없기 때문에 중립내각을 만들라는 뜻”이라며 “거국 중립내각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청와대와 여당이 일부러 진의를 왜곡해 역공을 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한 당직자는 “우리가 지난해 그토록 욕했던 연정을 하자고 먼저 제안할 리 있겠느냐”며 “물귀신이 따로 없다”고 여권을 비난했다.
때문에 거국 중립내각 문제는 여야가 논쟁만 벌이다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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