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모자를 눌러쓴 난 항상 웃음 간직한 피에로.’ 1990년대 초 ‘댄싱 퀸’ 김완선은 노래했다. 그 파란 웃음 뒤에 감춰진 아무도 모르는 눈물을. 이 시대의 ‘피에로’, 코미디언(개그맨). <개그콘서트> <웃음을 찾는 사람들> <개그야> 등 지상파 3사 공개 코미디가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마냥 웃을 수는 없다. 개그야> 웃음을> 개그콘서트>
5분을 웃기기 위해 23시간 55분을 고군분투해야 하고, 장고(長考) 끝에 엮어낸 코미디가 무용지물로 사라지는 일도 다반사다. 무대에서 내려서는 순간 언제 다시 무대에 오를 지도 알 수 없다. 환한 웃음 뒤에 진한 아픔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숨기고 사는 코미디언들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인터넷 검색어 1위 따윈 필요없어."
서울 여의도 KBS 연구동 4층, <개그콘서트> (이하 <개콘> ) 연습실. 40여명의 코미디언들이 제각기 연습에 몰두하느라 왁자지껄하던 이 곳에 김석현 PD, 장덕권 작가가 들어서자 일순 긴장감이 흐른다. 새로 발굴한 코너를 무대에 올릴 수 있는지 평가하는 시간이다. 개콘> 개그콘서트>
신인 개그맨 김현정, 김경아가 ‘달콤, 살벌한 두 여인’이란 개그를 선보인다. 선배들은 깔깔 웃으며 추임새를 넣어주지만 심판관인 PD와 작가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결국 ‘까였다’. 연습실 밖에서 만난 김현정은 의기소침해 보였다. “우리끼리 연습할 땐 떨리지 않았는데 감독님 앞에선 눈 앞이 캄캄해져 연기를 제대로 못한 것 같아요.” KBS 공채 21기 신인 개그맨 김종은이 “새 코너를 준비한 10팀 중 2팀 정도가 무대에 오른다”고 귀띔한다.
최근 인터넷 검색어 1위에 오른 ‘폭탄스’. ‘폭탄’ 세 여자와 ‘퀸카’가 등장해 외모 지상주의를 풍자하는 이 코너는 첫 방송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칭찬 한마디 던질 법도 하건만 김 PD는 쓴소리를 쏟아놓는다. “세 폭탄과 퀸카가 동등한 위치가 아니라 폭탄만 비하하고 있잖아. 폭탄들이 ‘자뻑’(자아도취) 상태라야 퀸카를 조롱할 수 있는 것 아냐?”
‘퀸카’ 김지민은 “시청자 반응이 좋아도 준비가 부족하면 코너가 바로 사라지기 일쑤”라고 말했다. ‘폭탄스’는 심기일전해 다음날 재평가를 받았지만, 김 PD의 지적을 받은 내용은 결국 방송을 타지 못했다.
"재충전이요? 언감생심이죠"
제작진보다 더 무서운 건 관객의 평가. 그래서 요즘 코미디언들은 방송과 대학로 공연을 겸하며 관객 마음을 읽어내기에 바쁘다. 새 코너들은 대개 3~4주 가량 대학로 무대에서 검증을 거친 뒤 제작진 앞에서 치르는 시험을 통과해야 시청자들과 만날 수 있다.
MBC <개그야> 의 일부 출연진과 신인들이 공연하고 있는 서울 대학로의 소극장 컬투홀. 관객들이 박장대소하는 가운데 누군가 슬쩍 빈자리에 앉는다. 그들의 눈은 무대가 아닌 관객을 향해 있다. 자신의 코너를 마친 코미디언들이 객석에 앉아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개그야>
소극장 공연은 소재나 표현에 있어 TV보다 자유롭지만 아이템에 대한 강박은 마찬가지다. 코미디언이 아이템을 끊임없이 뿜어내는 화수분도 아닐텐데, 차라리 재충전을 위한 휴식기를 갖는 게 낫지 않을까. “재충전이요? 방송에 나오지 않는 순간 ‘재미 없어서 잘렸다’고 말할 걸요.” (‘깔깔이’ 최국) 한때 절정의 인기를 누리다 TV에서 자취를 감춘 이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코미디언들에게는 관객들에게서 잊혀지는 것이 ‘형벌’이나 다름없다. “가수는 노래 한 곳으로 여러 무대에 설 수 있지만 우리는 한 아이템으로 그렇게 버틸 순 없잖아요. 소극장 공연을 통해 꾸준히 아이템을 저축해 두어야 하죠.” (‘뮤직 스토커’ 김한배)
"월급 받아 적금 붓는 친구들이 부러워요"
1년 365일, 휴일 없이 뛰어도 형편은 넉넉하지 않다. 신인들이 받는 TV 출연료는 몇 개 코너를 뛰든 회당 30만원 안팎. ‘특급’ 코미디언들도 160만원 수준이다. 과거보다는 나아졌다지만, 회당 1,000만원을 호가하는 개그맨 출신 MC나 다른 연예인들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공연 수입은 극장 임대료를 대기에도 빠듯하다고 공연 관계자들은 전한다.
“TV에 나오면 웬만큼 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월급 받고 꼬박꼬박 적금 붓는 친구들이 오히려 부러울 따름이죠.”(‘라이벌 뉴스’ 이경애)
그러다 보니 코미디는 뒷전이고 오락ㆍ교양 프로그램의 리포터나 패널이 주업이 된 코미디언들이 적지 않다. 시작은 ‘생계형 외도’지만, 운이 좋아 MC로 성장하면 다시 코미디 무대로 돌아오기 어렵다. 코미디언이 ‘단명’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컬트 엔터테인먼트의 김태진 팀장은 “일본의 경우 영향력 있는 문화계 인사 중 코미디언들이 많다”며 “우리나라는 아직 코미디가 중요한 문화 콘텐츠란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척박한 治퓻〉?불구하고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은, 그래서 아름답다. “꾸준히 개그를 하면서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에요. 같은 무대 공연이란 점에서 배울 것도 많고요. 인기만 믿고 벌써부터 다른 곳에 기웃거리지는 않을 거예요.”(‘사모님’ 김미려)
■ 개그맨?… 코미디언?
'웃기는' 건 매한가지인데 코미디(언)과 개그(맨)은 무엇이 다를까. KBS '유머1번지'를 비롯해 30여년간 코미디를 연출한 김웅래 인덕대 방송연예과 교수의 도움말로 궁금증을 풀어본다.
"넓은 의미에서 개그맨도 코미디언의 범주에 속한다. 젊은 코미디언들이 '우린 뭔가 좀 다르다'고 강조하기 위해 개그라는 용어를 내세웠는데, 이젠 그 말이 대표어가 돼버렸다. 1970년대를 풍미한 원맨쇼의 1인자 쓰리보이(본명 신선삼) 선생의 만담을 듣다 보면 개그라는 말이 나온다. 흔히 알고 있듯이 전유성 등이 처음 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굳이 코미디언과 개그맨의 차이를 따지자면 전자는 기승전결과 주제가 명확한 스토리에 연기력이 바탕이 되는 반면, 후자는 거두절미하고 상황이 주는 웃음을 추구한다고 할까. 빵과 케이크를 만들 때 재료나 굽는 법이 다르면 맛과 모양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도 빵과 케이크는 마찬가지. 지구상에서는 모두 코미디(언)으로 통한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 박준형 "인기 절정에도 미래 불안 여전"
“‘골목대장 마빡이’는 개그 리얼리티 쇼에요. 개그맨들의 현실이 그 안에 담겨있죠.”
‘갈갈이’ 박준형(31)은 KBS2 <개그콘서트> (이하 <개콘> )의 ‘골목대장’이다. 2001년 ‘갈갈이 삼형제’로 얼굴을 알린 그는 수많은 개그맨들이 <개콘> 을 통해 명멸하는 사이, ‘청년백서’ ‘사랑의 가족’ ‘패션 7080’ 그리고 ‘골목대장 마빡이’까지 인기 코너를 이어오며 사랑 받고 있다. 지금은 <개콘> 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개콘> 개콘> 개콘> 개그콘서트>
“1997년 KBS 공채 개그맨이 됐는데 일거리가 없는 거예요. 대학로에서 2년 반 동안 공연하며 공개 코미디의 감을 알게 됐죠.” <개콘> 이 등장하면서 기회를 잡은 그는 쉴 새 없이 대중의 트렌드를 좇아 새로운 개그를 쏟아냈다. 표준어와 사투리의 뉘앙스 차이를 절묘하게 대비한 ‘생활사투리’같은 언어유희부터 ‘사랑의 가족’처럼 독특한 분장으로 웃음을 주는 오버분장 개그까지. “한국처럼 코미디 트렌드가 빨리 변하는 나라도 없을 거예요.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바로 도태됩니다.” 요즘 대학로 공연에서는 ‘동성애 개그’를 실험 중이다. 개콘>
요즘 장안의 화제인 ‘골목대장 마빡이’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대머리 가발을 쓴 네 명의 캐릭터가 잇따라 등장해 자신의 이마를 때려대는 ‘마빡이’는 우스꽝스럽고 어이없는 행동으로 웃음보를 자극하는 슬랩스틱 코미디같지만, 그 속에는 “죽어라 이마를 때려도 CF 한 편 안 들어온다”며 신세 한탄을 하는 개그맨의 현실에 대한 풍자가 숨겨져 있다. ‘인기’ 개그맨인 박준형마저도 <개콘> 외에 라디오 DJ, 오락 프로그램 MC에 각종 행사까지 발바닥 닳도록 뛰어야 생활이 가능한 현실. “개그맨들은 인기가 절정에 오르는 그 순간부터 드라마와 버라이어티 쇼 출연을 고민해요. 개그만으로는 미래가 불안하거든요.” 개콘>
그래도 박준형은 MC로 성공해 개그맨 딱지를 뗀 이들과 달리, 개그를 계속할 생각인 것 같다. 몇 해 전부터는 60여명의 식구를 거느린 개그 기획사 ‘갈갈이 패밀리’와 개그 공연장 ‘갈갈이홀’을 운영하면서 일을 더 크게 벌렸다. 하지만 그의 꿈은 의외로 소박하다.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아요. 다만, 이끌어줄 형이 있고 활동할 무대가 있으면 후배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개그를 하지 않을까요. 개그맨이 개그에만 전념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골목대장’이 이마를 때리다 지치기 전에 그 작은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강명석 객원기자
■ 코미디언 지망생들이 지상파 방송사들의 공채에만 매달리던 시절은 갔다. 이제 그들의 발길은 코미디 기획사로 향한다. 대학로에 소극장을 두고 트레이닝 시스템을 갖춘 기획사들이 한국 코미디계를 이끄는 중심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박승대의 스마일매니아, 박준형의 갈갈이패밀리, 컬투(정찬우 김태균)가 이끄는 컬트엔터테인먼트 등 10여 곳이 연습생을 포함해 10~60여명의 식구를 거느리고 지상파 3사의 공개 코미디를 주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KBS <개그콘서트> (이하 <개콘> )의 이수근, 신봉선, 김병만 등이 신생 기획사 G&미디어 컴퍼니와 계약하는 등 ‘헤쳐 모여’도 활발하다. 개콘> 개그콘서트>
코미디 기획사는 <개콘> 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KBS 공채 출신 이외의 코미디언에게도 문호를 열면서 등장했다. KBS 개그맨 출신인 박승대 대표 등이 대학로 공연과 대학 개그동아리 등에서 신인들을 발굴, <개콘> 의 오디션 기회를 주선하면서 그들의 매니지먼트를 맡은 것이 코미디 기획사의 원형이다. 개콘> 개콘>
기획사들은 소속 코미디언이 TV 출연으로 얻은 인기를 발판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 <웃찾사> )이 주무대였던 컬트엔터테인먼트는 MBC <개그야> 에 ‘사모님’ 김미려 등을 데뷔시키며 ‘영역 확장’에 성공했다. <개콘> 의 ‘고음불가’와 <웃찾사> 의 ‘나몰라 패밀리’는 디지털 싱글을 발매했고, 갈갈이패밀리의 박준형 정종철 등은 코미디 캐릭터를 그대로 옮긴 <갈갈이패밀리와 드라큐라> 등 어린이 영화를 제작했다. 갈갈이패밀리와> 웃찾사> 개콘> 개그야> 웃찾사> 웃음을>
그러나 코미디의 산업화를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기획사가 코미디 시장의 수요 확대가 아닌, 방송사의 필요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 김시덕은 “코미디 시장은 과거보다 오히려 축소됐으며, 지금은 과거 <개콘> 이 독점하던 시장을 지상파 3사가 나눠 가진 셈”이라며 “경쟁은 더 치열하지만 얻는 것은 더 줄었다”고 말했다. 시장은 작은데 공급이 넘치니 여전히 방송사의 힘이 기획사를 압도한다. 이 때문에 기획사와 소속 코미디언이 방송 출연과 수익 분배 등을 놓고 갈등하기도 한다. 지난해 윤택 김형인 등과 박승대 대표 사이에 벌어진 ‘노예계약’ 파문이 대표적인 예. 갈갈이패밀리의 최원석 실장은 “코미디언이 독립을 원하면 그대로 놔준다. 다들 힘드니 각자에게 유리한 길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콘>
코미디가 어엿한 문화산업으로 성장하려면 시장 확대가 급선무다. SBS <웃찾사> 의 박상혁 PD는 “시장을 넓히려면 다양한 세대가 즐길 수 있는 개그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게 가는 과도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공개 스탠딩 코미디 일색에다 향유층도 10, 20대에 국한된 현재의 구조로는, 시청률이 아무리 높아도 결국 ‘파이 나눠먹기’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작고한 코미디언 김형곤씨가 적확하게 꼬집었듯이, “데뷔 1년 만에 중견 되고 2년 만에 원로 되고 3년 만에 은퇴하는” 코미디언의 단명(短命) 현상, 풍자가 사라지고 말장난만 판치는 현상 등도 그런 구조에서 파생한 문제들이다. 김웅래 인덕대 방송연예과 교수는 “기획사들이 코미디언뿐 아니라 좋은 코미디 작가를 전속해 참신한 소재를 발굴하고, 코미디언들에게 화술이나 판토마임, 마술, 연기를 가르치고 수준 높은 문화 특강도 해서 손색 없는 대중문화인으로 키워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웃찾사>
강명석 객원 기자 lennonej@hk.co.kr
■ 안방에 웃음꽃 코미디 42년
한국 방송 코미디는 1964년 TBC(동양방송) TV를 통해 첫 전파를 타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본격적인 ‘코미디 시대’를 연 것은 1969년 MBC의 <웃으면 복이 와요> . <웃으면…> 은 악극단에서 이름을 날리던 구봉서 서영춘 배삼룡 등을 영입, 전국을 웃음 바다로 몰아넣었다. 웃으면…> 웃으면>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라는 전설적 유행어를 만든 구봉서는 정극 바탕의 상황 연기로, ‘비실비실’배삼룡은 ‘개다리 춤’같은 슬랩스틱 코미디로, 서영춘은 “시골영감 처음 타는 기차 놀이라~”로 시작하는 <서울구경> 을 부르며 70년대 트로이카 시대를 구축했다. 70년대 후반에는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MBC <일요일 밤의 대행진> , TBC <토요일, 전원출발> 등을 무대로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등 유행어를 쏟아내며 악극단 코미디의 정수를 선보였다. 토요일,> 일요일> 서울구경>
80년대 코미디계는 대변혁을 맞는다. 고영수 전유성 송영길 등이 재치 있는 말솜씨와 촌철살인의 애드리브로 슬랩스틱과 콩트 위주의 기존 코미디계를 뒤집으며 개그 시대를 연다.
82년 시작된 KBS 개그맨 공채는 김한국 이봉원 김미화 등을 배출하며 개그 전성기를 일궜다. 이들이 활약한 <쇼! 비디오 자키> <유머1번지> 는 90년대 초반까지 안방극장을 장악했다. 김형곤 김병조가 “잘 돼야 될 텐데” “지구를 떠나거라~”라는 유행어를 구사하며 재벌과 정치인을 소재로 한 시사풍자 개그를 개척한 것도 이때다. ‘영구’ 심형래와 ‘맹구’ 이창훈은 바보 연기로 슬랩스틱의 명맥을 이어갔다. 유머1번지> 쇼!>
90년대 초반부터는 개그맨이 MC를 겸하는 버라이어티 쇼 형식의 코미디가 날개를 단다. 김용만 김국진 주병진 이경규 등이 대표적이다. 99년 문을 연 KBS <개그콘서트> 는 스탠딩 코미디 시대를 열었다. “방바야~”로 유명한 심현섭은 ‘개인기 코미디’의 물꼬를 텄다. 2003년 등장한 SBS <웃찾사> 는 극단적 언어유희와 황당한 설정, 춤을 결합한 신종 코미디로 스탠딩 코미디의 영역을 넓혔다. 웃찾사> 개그콘서트>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 코미디언 지망생의 하루
‘연습생’이라 불리는 코미디언 지망생들. 이들에게 TV가 코미디의 메이저리그라면 대학로 공연장은 마이너리그이자 소박한 꿈을 펼칠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작년 모 방송사 공채시험에서 낙방한 강장수(가명ㆍ24)씨는 학교 연극동아리 선배의 추천으로 대학로 소극장을 찾았다. 오디션을 거쳐 ‘연습생’이 됐지만 아직은 극장 청소와 거리 홍보가 주업무다. “지금은 선배들이 무대에 올린 코너의 대본을 보고 따라 해요. 그런 후에 저희들끼리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어서 선배들에게 점검을 받죠.”
연습생들의 하루는 선배 코미디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공연이 끝나면 그날 공연 평가와 새 아이템 개발을 위한 난상토론으로 날을 새기 일쑤다. 지방 대학에 다니는 강씨는 수업을 마치고 오후 5시쯤 극장에 출근, 새벽 5~6시에나 귀가한다. 강씨는 “몸이 고된 것보다 코미디언은 아무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태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코미디계는 다른 연예계에 비해 외모 차별이 없어 ‘웃기는’ 실력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남들은 쉽게 하는 ‘웃긴다’는 말이, ‘웃겨야 사는’ 이들에게는 천근, 만근의 무게로 어깨를 짓누른다. 더욱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수입도 전혀 없어 웬만큼 독하지 않고는 1년, 아니 6개월도 버티기 힘들다.
“연습생들도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아르바이트 같은 거 할 틈이 없어요. 부모님께 정말 죄송하지만 꿈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빡빡한 일과에 지친 듯 연신 눈을 비비던 강씨는 ‘꿈’을 말하는 순간, 눈빛이 밝아졌다. “웃음 속에 메시지를 녹여낼 수 있는 코미디를 하고 싶어요. 지금처럼 코미디에 대한 관심이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코미디언이 코미디만으로 제대로 대접 받는 날이 올 거예요.”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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