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토를 골고루 발전시켜 주민들이 차별 없이 잘 살 수 있게 하는 일이 정말 가능한가. 도시의 생성과 발전 역사를 보면 이런 질문은 공허하게 들린다. 도시란 물산 교통 기후 등 입지적 조건 외에 지배계층의 세력 등을 포괄하는 지정학적 입지여건에 따라 생성하고 소멸해왔다. 각 도시의 운명은 지정학적 여건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도록 돼 있다.
서울은 물론 주요 도시의 흥망성쇠 역시 이 같은 지정학적 여건에 좌우되어 왔다. 권력자의 철학과 의지가 개입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상의 입지를 선택하는 범주를 벗어날 수 없었다. 차별을 없애 균형을 이루겠다는 의지는 극히 제한적으로 반영될 뿐이다. 도시의 차이가 당연한 것이라면 이런 도시들의 분포 정도에 따른 지역의 차이 역시 피할 수 없다.
'균형발전'은 누구에게나 솔깃하다. 균형발전의 한계와 허점을 알면서도 이를 반대하고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국민의 입장이든, 위정자의 입장이든 균형발전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소외지역 주민들의 인심을 한 순간에 휘어잡을 수 있는 정치구호로선 최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서 모든 정권이 집권을 하면서 지역 균형발전을 소리 높이 외쳐왔다.
● 솔깃하지만 공허한 정치구호
참여정부의 최우선 국정목표 역시 균형발전이요, 행정수도 이전은 그 대표적 프로젝트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약으로 충청권 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위헌 결정 등의 우여곡절을 거쳐 내용을 약간 손질하고 이름을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바꾸어 합헌 결정을 얻어냈다. 혁신도시나 기업도시 등의 건설도 균형발전의 논리에서 추진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균형발전이 안고 있는 본질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들은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이 어느 정도 결실을 보기를 기대했다. 모든 분야에서 양극화가 심화하는 마당에 지역ㆍ주민의 빈부격차 해소는 국가가 외면할 수 없는 과제다. 80대 20의 법칙이 진리인 양 고착되었듯 양극화는 어느 사회에서나 있기 마련이지만, 양극화의 부분적 완화는 정부가 외면할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참여정부가 기치로 내건 지역 균형발전의 논리가 참여정부 안에서 여지 없이 무너지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와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이 수도권 집중 완화,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와중에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하고 불균형 발전을 심화하는 시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잇단 수도권 신도시 개발은 지역 균형개발 논리와는 이가 맞지 않는다. 수도권 주택난 해소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더라도 대규모 인구 유입을 초래할 거대 신도시 건설은 균형발전 철학과는 동떨어져 있다.
균형발전의 지휘봉을 쥔 건교부장관이 쫓기듯 신도시계획을 밝히고 후속 신도시 개발계획을 흘리는 것을 보면 애초에 이 정부의 균형발전론은 지역 민심을 얻기 위한 임시 방편이었거나, 아니면 균형발전을 포기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아무리 집값을 잡고 투기를 추방하는 일이 급하지만 기치를 내리면서 날림 대책들을 내놓는 정부에 국민이 믿음을 줄 까닭이 없다.
되짚어 보면 균형발전을 꾀한답시고 정부가 한 일은 투기를 전국으로 확산시키고 멀쩡한 지역의 집값까지 뛰게 해 내 집 마련이나 집 늘리기가 소망인 실수요자들을 좌절시킨 일이었다. 균형발전을 위해 전국에서 벌인 동시다발의 도시개발은 막대한 보상금을 투기자금으로 둔갑시켜 전국을 투기장으로 만들었다.
숱하게 쏟아낸 부동산정책이 효험은커녕 역효과를 보이자 정부는 또 다른 고강도 처방을 내 놓을 모양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부동산문제 해결에 '올인' 하겠다고 했으니 부동산시장은 또 한번 요동칠 것이다.
● 억지 균형발전정책이 더 문제
이제야말로 균형발전이라는 허망한 화두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지역ㆍ주민의 빈부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정치구호는 애초에 믿을 게 아니다.
균형발전 논리에 집착하는 한 무리한 부동산대책, 모순된 개발계획의 남발을 피할 수 없다. 그럴 바에야 윗논에 물이 차면 자연스레 아랫논으로 물이 흘러가는 이치를 따르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지역 균형발전은 물론 수도권 규제 완화, 제조업 해외 탈출, 일자리 감소 등의 해답은 여기서 찾아야 한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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