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국가 암(癌) 법을 제정하고 250억 달러(약 26조원)를 쏟아부으며 “암을 정복하겠다”고 했을 때 국민들에게 선포한 시한은 1976년이었다. 하지만 30년이 더 지난 지금 암의 발병률이나 사망률은 전혀 개선되지 않아 “암 치료는 실패”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특히 암 연구자와 전문의들은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암 치료의 새 패러다임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이오 마커(Bio marker)’를 이용한 조기 치료다. 7일 가톨릭대 의대에서는 세계 전문가들이 참석, ‘암 조기발견과 치료를 위한 바이오 마커 발굴과 응용’ 심포지엄을 열었고, 국제 공동 연구 컨소시엄도 추진되고 있다.
혈액·소변 검사로 암 진단
심포지엄에는 2001년 노벨의학상 수상자이자 미국의 3대 암센터 중 하나인 프레드 허친슨 암 센터 소장인 리랜드 하트웰 박사가 참석했다. 그는 “지금까지 제약사들은 암세포를 죽이는 약 개발에 몰두했지만 이러한 치료는 무지막지한 비용을 들여도 생명을 몇 년 연장하는데 그쳤다”고 밝혔다. “암 사망률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는데다가, 암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치료비, 경제적 손실 등을 통틀어 미국에서만 연 1,710억 달러에 달한다”는 것이다. 하트웰 박사는 “조기진단만 가능하다면 암세포를 제거하는 외과수술과 방사선 치료로 완치할 수 있기 때문에 바이오 마커를 이용, 암을 조기에 잡는 방법으로 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오 마커를 이용한 암 진단이란, 혈액이나 소변에 포함된 무수히 많은 단백질 중에서 암의 조기 지표가 될 만한 단백질을 식별함으로써, 간단한 혈액·소변검사만으로 전이되기 전의 암을 진단하자는 것이다. 혈관질환 진단에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를 재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도 건강진단 항목 중에는 PSA(전립선암), CA125(난소암) 등과 같은 암 표지자 항원검사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단백질 수치가 높아도 모두 암 환자는 아니어서 진단이라기엔 한계가 있다.
단백질 분석기술의 발전
하트웰 박사는 “아직은 성공적인 바이오 마커를 발굴한 사례가 없지만 최근 프로테오믹스(단백질체학)의 기술적 진전으로 2~3년 뒤면 뭔가 결과가 나오기 시작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장밋빛 전망을 제시했다. 심포지엄을 주최한 프로테오믹스이용기술개발사업단의 유명희 단장은 “지금까지는 단백질을 분석하는 기술적 한계로 인해, 50만개나 되는 단백질 중에서 어떤 단백질이 특정 질병의 특정 단계에서 나오는 단백질인지 확인이 어려웠다”고 설명한다. 최근 발전한 기술은 저렴한 비용으로 대량의 단백질을 분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수많은 암 환자의 혈액과 정상인의 혈액에서 어떤 단백질이 차이가 나는지를 추적해 간다면 ‘암 표지’가 되는 단백질을 구분해 낼 수 있으리라고 전망되고 있다.
이는 마치 10여년 전 게놈 프로젝트가 한창 연구될 때 피 한 방울로 DNA검사만 하면 모든 질병의 발병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된 후 DNA만으로는 복잡한 생리현상과 질병을 모두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관심은 단백질로 옮겨갔다.
맞춤치료, 합병증 예측에도 활용
바이오 마커는 질병 진단뿐 아니라 신약개발, 맞춤치료, 합병증 예측 등에도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다. 유 단장은 “신약 개발은 전임상, 1상 임상, 2상 임상, 3상 임상으로 진행할수록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뒤늦게 신약의 부작용이나 대사특성이 발견돼 엄청난 돈을 낭비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문제를 미리 진단할 수 있는 바이오 마커가 있다면 결과적으로 약값을 낮추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약에 따라 치료효과를 미리 알아보는 것도 임상에서는 아주 중요하다. 유 단장은 “아바스틴과 같은 항암제는 한번 치료에 1억원이나 드는 반면 일부 환자는 전혀 반응이 없다”며 “특정 환자에게 약이 듣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바이오 마커가 발굴된다면 맞춤치료가 가능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여러 합병증을 예측하는 용도로도 활용될 수 있다. 당뇨는 혈당측정으로 쉽게 진단할 수 있지만 막상 환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합병증은 진단이 어렵다. 연구자들은 바이오 마커로 당뇨 환자가 어떤 합병증이 나타나는지 진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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