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9일 정치권의 거국중립내각 요구에 첫 반응을 보였다. 여야가 합의하는 등 여건만 충족되면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여당에 대한 영향력도 떨어지고 2007년 대선 등 향후 정치일정에서 발언권도 위축될 것을 우려해 소극적이거나 아예 무시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적극적으로 나왔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10월말에 한명숙 총리와도 상의했는데 전제 조건이 충족될 수 있겠느냐는 생각에 제안을 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렇게 나오자 노 대통령의 속내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정치권의 의례적 요구를 지렛대로 거국내각 구성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본다. 노 대통령 스스로 대선을 향한 정치권의 사생결단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국정에 전념할 수 있다고 판단,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내건 전제조건을 들어 반대의 해석을 하는 이도 적지 않다. 야당의 공세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짙다는 얘기다. 윤 대변인은 이날 사법개혁, 국방개혁 관련 법안 등 국회 계류중인 법안의 합의처리는 물론 앞으로도 국회운영을 원만히 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이를 전제로 내각구성 역시 여야가 먼저 합의하라는 요구다. 둘 다 말로는 그럴 듯 하지만 현 여야관계 등을 감안하면 실현가능성은 낮다.
윤 대변인은 특히 원만한 국회운영을 주장하며 “지난 1년간 국정과제 처리가 국회에서 늦어지면서 국정이 표류하고 정쟁만 난무했다”고 국정난맥상의 책임을 청와대가 아닌 정치권 탓으로 돌렸다. 거국내각이라도 구성해 더 이상 실정을 하지 말라는 여야의 요구에 “발목이나 잡지 마라”고 강변하는 모양새다. “국정혼선의 더 큰 책임은 정쟁을 일삼은 정치권에 있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일단 운을 떼 만큼 향후 정국추이에 따라 전제조건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며 중립내각을 현실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여전히 엄존한다.
이동국 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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