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강화가 전례 없이 급격하게 사교육을 팽창시키면서 공교육을 극도로 약화시킬 조짐이 뚜렷하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교육부의 복안은 전국 사범대의 각 교과교육 교직과정에 논술지도법을 포함시켜 '범교과적으로' 대응한다는 것 같다. 다시 말해 국어 교과는 국어 논술을, 수학 교과는 수학 논술을 가르친다는 식이다.
● 논술이 변별 위한 시험기술 돼서야
교육부의 발상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논술은 사실 어느 교과의 독점물이 아니다. 논술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들이 배운 지식을 자기 생각으로 삼아 사물이나 세상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지적 담력을 키울 수 있다.
언뜻 보기에 논술과 별 관련이 없는 것 같은 예체능계도 논술을 통해 예술과 체육에 대한 학생들의 철학을 키워주면 국민생활에서 정신적 지도자로 커갈 안목이 생긴다. 그러나 사범대의 교사 양성체제를 보면 '범교과적' 논술 수요 대처가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인지 금세 밝혀진다.
현재 사범대 교직과정은 전부 개별 교과의 지식을 전달하는 교과중심 편제이다. 즉 교사의 최우선 목표는 자기 교과의 지식을 학생들에게 숙지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의 생명은 교과 존립과 직접 연결된다.
그러다보니 교과별 분리 의식이 철저해 타 교과까지 생각할 엄두는 전혀 나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교과 지식까지 연결시켜야 작성할 수 있는 '통합형' 논술을 각 '교과' 논술에서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범교과적으로 논술을 가르치라는 교육부의 발상은 아무리 봐도 '통합'이라는 사고능력을 거기에 들어갈 개별 요소들의 '합산(짜집기)'으로 오해한 것 같다. 즉, 통합논술은 교과논술의 총합이니까 각 교과에서 논술을 가르치면 학생들은 알아서 통합적으로 논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인상이다.
통합적 사고는 부분적 사고들의 산술적 총합이 아니다! 부분들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통합시킬 주제의식이 먼저 정립되고, 그것에 비추어 각 부분들의 한계와 가능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그러면서 정작 통합적으로 사고하여 글을 쓰려면 통합을 위한 별도의 원칙과 관점, 그리고 관련 지식의 파악과 구성 능력이 구상되고 체득되어야 한다.
통합형 사고에 대한 이런 이해가 없으면 각 교과 안에서 결국 논술을 가장한 변형된 주관식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것은 특히 이미 예시 문제가 나온 각 대학의 자연계 논술에서 벌써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당연히 사교육의 좋은 밥이다.
해법은 하나 뿐이다. 우선 논술을 입시에서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시험 기술로 보지 말아야 한다. 논술은 청소년들이 미성년 시절을 마감하면서 자신이 그동안에 익힌 지식과 삶을 통합적으로 '성찰'하여 그 다음의 큰 배움(大學)과 인생을 창의적으로 전망할 수 있는 능력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 기회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이렇게 얘기하면 논술 교과를 별도로 설치하라는 말이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국민공통기본교과 중에는 이미 이런 통합적 사고를 염두에 둔 교과가 있기 때문이다. 도덕ㆍ윤리 교과가 그것이다.
● 공교육ㆍ교육부만 눈 가리고 아웅
이 교과는 일찍이 학제적 접근으로 도덕ㆍ윤리를 가르치겠다고 6차, 7차 교육과정에서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물론 그 이상이 그대로 실현되기는커녕 수능 몇 문제에 매달리는 암기 과목으로 전락하긴 했다.
하지만 작년부터 진행시켜온 교육과정 개정작업에서 도덕ㆍ윤리 교과는 철학계와 손잡고 통합적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는 쪽으로 교과서를 대폭 개정하던 참이다. 이렇게 하면 무엇보다 기존 교과 편제를 근본적으로 동요시키지 않고도 논술에 학문적 명운을 걸어왔던 철학과 윤리학의 저력을 공교육 편제 안에서 활성화시킬 수 있다.
공교육 안에 이런 논술 선도과정이 없으면 논술전문학원 방식으로 밀고 오는 사교육의 기동성을 당해낼 수 없다. 범교과적으로 논술을 가르쳐서는 논술 수요에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을 그쪽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는 항상 교육 현실을 잘 아는 쪽으로 쏠린다. 공교육만, 그리고 교육부만 두 눈 가리고 아옹 하고 있다.
홍윤기ㆍ동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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