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션에 관한 가장 큰, 그리고 절망적인 오해 한가지. 해마다 봄가을로 열리는 패션컬렉션이 디자이너들의 작품발표회로 취급되는 것이다.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고객에게 VIP용 무료티켓을 보내고, 패션전공 학생이나 일반인들은 회당 7,000원을 내고 티켓을 구입한다. 마치 영화 한편을 감상하듯 쇼를 감상하고, 쇼장에 나타난 유명 연예인들을 휴대폰이나 디카에 담는 것으로 만족스러워한다. 무대위 일장춘몽이 황홀하면 그것으로 끝, 더 무엇을 바라냐고?
서울컬렉션의 열기가 한창이었던 8일 컬렉션 참관 및 취재를 위해 방한한 일본 저널리스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요미우리신문, 패션전문지 WWD재팬, GAP 재팬, 이탈리아 패션정보지 피티이매진 등의 기자들이었다. 그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패션쇼 자체는 재미있지만 컬렉션 본연의 취지는 상당히 변질된 것 같아 아쉽다” 였다.
10일간의 긴 일정을 소화하느라 퍽 지쳐보이는 그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도대체 수주상담은 어디서 하느냐?”고 물었다. 컬렉션 장소인 서울무역전시장(SETEC)내에 두개의 쇼장 사이 전시장에서 주로 바이어상담이 이루어진다고 하자 실망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전시장을 둘러봤지만 업체에서 상담 나온 사람도 없고, 몇 안되는 전시품 조차 2006년 가을겨울 상품들이더라”며 “2007년 봄여름 컬렉션을 하면서 지난 시즌 상품을 전시하고 수출입상담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물음에 얼굴이 후끈했다. 전시장을 지키는 사람들이 대부분 주관사인 서울산업통상진흥원에서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이라 브랜드에 대한 정보를 얻을 길이 없는데다, 옷을 좀 살펴볼까 싶으면 “만지지 말라”는 주의부터 듣게되는 통에 내심 “아니, 바이어들이 옷도 만져보지 않고 어떻게 구매상담을 하누?”싶었던 기자로서는 공감이 가는 소리였다.
비판은 여기서 그치지않았다. 극소수의 초청 유명인사 외에는 저널리스트와 바이어들만으로 진행되는 해외 컬렉션과 달리 객석을 일반인들이 가득 메운 것도 놀라워했다. 패션쇼 시작전 장내를 정리하는 안내방송이 한국말로만 되어있어 100여 명을 넘게 초청했다는 해외 바이어나 저널리스트에 대한 배려는 아예 없었다. 그나마 대부분의 쇼가 30여 분, ‘유명 연예인이 올 때까지’ 패션쇼 시작시간을 미루기로 악명이 높은 지춘희씨의 경우 50분 가까이 늦었는데도 사과방송이 없었다.
“이미 저널리스트와 바이어들이 입장했는데 리허설을 계속 하는 디자이너들이 이해가 안되더라”는 지적도 나왔다. 갭 재팬의 마수나리 교코 기자는 “해외컬렉션의 경우 리허설은 철저한 비공개”라고 전했다. 바이어들이 다 입장했는데도 리허설을 계속 한 이진윤씨의 쇼에서 한 해외 저널리스트가 쇼 시작과 동시에 걸어나간 장면이 떠올랐다.
기간이 너무 길다는 데에는 전원이 한 목소리였다. 피티이매진 히라바야시 세이코 기자는 “파리와 밀라노도 컬렉션 기간을 6~7일로 대폭 줄여 해외 바이어와 저널리스트를 더 많이 유치하려고 경쟁하고 있다”면서 “디자이너 수준이 천차만별인데다 세계적인 패션상품 수주시즌과 동떨어진 상태에서 일정까지 길다면 해외바이어를 유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 모든 평가를 종합해보면 하나의 결론이 나온다. 해외의 컬렉션이 패션산업계의 한 시즌 장사를 결정짓는 치열한 비즈니스의 현장이라면 우리의 그것은 관행적인 작품발표회 수준에 머물러있다는 것이다. 관행처럼 굳어진 각종 그룹별 발표회를 위해 수억 원에 이르는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관행에 안주할 것인가 명실상부한 컬렉션으로 발돋움할 것인가, 서울컬렉션은 지금 기로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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