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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언론인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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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언론인 노무현

입력
2006.11.09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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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실패한 대통령이다. 북핵문제든 한미관계든 부동산을 비롯한 민생문제든 무엇 하나 칭찬할 만한 업적이 없고, 5년 재임기간에 세상만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그의 인기가 바닥을 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산에 가면 들리는 것은 온통 대통령에 대한 욕과 비난인데, 이제는 그나마도 지친 탓인지 "야, 너는 아직도 노무현 이야기하냐?" 이런 말까지 들린다.

● '실패한 대통령'의 역사적 기여

그러나 실패한 대통령이든 성공한 대통령이든 모든 대통령은 누구나 그 나름의 시대적 소명과 역할이 있었고, 어떤 방식으로든 민족과 국가의 발전에 기여한다. 그 점에서는 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의 대표적 기여로는 권위주의 탈피와 투명한 사회로의 이행, 이 두 가지를 먼저 꼽고 싶다. 쉽게 말해 노 대통령은 괜히 폼 잡고 목에 힘 주고 돈 먹고도 탈이 없는 세상이 가게 만들었다.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대세요, 우리 사회는 그런 점에서 또 하나의 커다란 분수령을 넘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나쁜 것은 편 가르기다. 모든 부문에 걸쳐 노 대통령은 통합의 리더십을 지향ㆍ발휘하기보다 분열과 대립의 편 가르기를 연출ㆍ조장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대통령의 마지막 권한이라고 생각하는 인사권에 기대어 무리한 인사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공모를 빙자한 낙하산인사를 합리화하고 변명하는 모습을 보면 숨이 턱 막히고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다.

역사적 시대적 의미와 기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으로서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는 무슨 일을 해야 성공할 수 있었을까. 노 대통령은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을 찾았다(자택을 사저라고 보도한 언론이 많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공관이 있어야 사저도 있다). 그리고 전자방명록에 "치열한 삶으로 역사의 진보를 이루셨습니다.

치밀한 기록으로 역사를 다시 쓰게 할 것입니다"라고 썼다. 나는 그걸 읽고 감탄했다. 기자들 말로 야마(기사의 핵심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일본말)를 정확히 잡은 멋진 문장이었고 DJ의 마음에 쏙 들 만한 적확한 표현이었다.

치열과 치밀, 삶과 기록 이런 단어들의 대비를 통해 과거와 미래의 DJ를 잘 부각시켰다. 글의 리듬이 뛰어나다. 방문 전에 미리 생각했겠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물에 대한 분별이 깊지 않고서는 이런 글을 쓸 수 없다.

초년 기자 시절, 사쓰마와리(사건기자를 가리키는 일본말) 선배는 인생 선배라는 말을 들었다. 취재를 통해 얻게 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와 분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그것은 나이나 입사연도와는 관계가 없다.

● 언론인의 장점 갖춘 노대통령

노 대통령의 그 글을 보면서, 그는 대통령보다 언론인이 됐으면 오히려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정한 사안을 보도하고 전달할 때 그 사안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언론인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그 점에서 노 대통령은 대단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으로서는 단점으로 지적되는 것도 언론인이라면 미덕이고 장점이 됐을 수 있다.

그가 여러 가지 형태로 계속해서 보여준 역발상의 기획력, 즉흥적이지만 창의적인 임기응변, 논리적인 문장력, 의제를 선점해서 설정하는 능력은 언론인들이 꼭 갖춰야 할 덕목이다.

그가 언론인이 됐더라면 이번에는 언론계가 시끄러워졌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언론인은 기본적으로 말꾼 구경꾼 훈수꾼 비평꾼이므로 나라와 사회에 대해 미치는 영향이나 폐해는 적다. 그로 인해 언론계가 편이 갈릴 개연성도 별로 없다. 대통령보다 더 큰 이름을 남기기도 당연히 어렵다.

언론인이 됐으면 아주 독창적이고 누구보다 더 우수했을 사람이 끝내 대통령이 되어 5년동안 언론과 싸움만 하다가 물러가게 되는 모습이 안쓰럽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본령에 맞는 직업을 택해 보람 있게 일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에게 가장 잘 맞는다고 자타가 평가해 주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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