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중간선거 참패에 따른 수습책의 일환으로 선거에서 압승한 민주당 등으로부터 이라크전 실패 책임자로 지목돼온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전격 경질하고 후임에 로버트 게이츠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명했다.
이번 경질은 우선 이라크전 정책의 수정을 시사하는 것이나 주한미군 일부 철수 및 재배치, 한국군으로의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등 한미동맹 재조정 작업을 강력히 추진해 온 럼스펠드 장관이 교체됨으로써 미국의 대한 정책도 영향권내에 놓이게 됐다.
특히 럼스펠드 장관은 백악관이 상대적으로 유연한 입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 한국측의 2012년 희망과는 달리 전시작전권 이양시기를 2009년으로 정하는데 강한 집착을 보여왔기 때문에 그의 퇴진은 향후 한미 협상에서 미국의 강경 입장이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주한미군을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하고 2008년까지 2만5,000명 수준으로 감축한다는 큰 틀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이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 주한미군기지 환경오염 처리 문제 등 여타 한미 군사 현안에 있어서 다소 일방적이던 미국의 협상 태도가 바뀔지 여부도 주목된다.
뿐만 아니라 럼스펠드 장관은 북한 핵 문제 대처 과정에서 대북 강경책을 주도해온 미 행정부내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대표적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의 경질은 대북 협상을 중요시해온 민주당의 중간선거 압승에 더해 부시 정권의 대북 정책 변화에도 일정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 출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날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유대인 기금모집 만찬에서 “부시 정권이 북한과의 대화를 차단하고 북한을 고립시키려 한 것은 잘못된 정책방향”이라며 “북한은 세계의 관심과 식량, 에너지 같은 필수품을 간절히 원하고 있으며 대화채널만 열리면 북한 핵 문제는 1년 안에 해결 가능할 것”이라고 연설했다. 또 차기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유력한 민주당 톰 랜토스 의원은 “현재 핵문제로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북한 및 이란과 직접 대화를 추진하는 등 대외정책의 극적인 변화를 추구할 것”이라면서 “북한을 방문할 계획이며 나아가 이란도 방문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이라크전 정책과 관련, 부시 대통령은 이날 럼스펠드 장관의 경질을 발표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이라크에서 진전이 없는 데 대한 불만을 나타내기 위해 투표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 “럼스펠드 장관과 나는 국방부에 새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모종의 변화가 있을 것임을 강력 시사했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딕 체니 부통령의 사퇴 요구에 대해선 “2009년 임기 말까지 함께 갈 것”이라며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
럼스펠드 장관의 후임인 게이츠 장관 지명자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인 1991년부터 1993년까지 CIA 국장을 지냈고 현재는 텍사스 A&M대학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한편 민주당은 8일 계속된 개표 결과, 하원 총 435석 가운데 232석을 확보해 다수당 자리를 더욱 확고히 했다. 이어 상원 선거 마지막 경합지였던 버지니아와 몬태나 주에서도 승리, 상원 100석 중 과반수인 51석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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