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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방치된 학교 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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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방치된 학교 성교육

입력
2006.11.09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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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초ㆍ중ㆍ고교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점수따기' 노하우가 얼마나 대단한지 해외유학을 가서도 맹위를 떨치는 모양이다. 하지만 전인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선진국과 도저히 견줄 수 없을 만큼 교육여건이 열악한 게 현실이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국회 교육위 김교흥(열린우리당) 의원실과 함께 전국 초ㆍ중ㆍ고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성교육 실태조사(본보 10월30일자 10면)에서도 점수따기 교육에 올인하는 풍토가 여실히 확인됐다.

현재 교육인적자원부가 권장하는 성교육 시간은 연간 10시간. 그런데 이를 지키는 학교는 전국 초ㆍ중ㆍ고교의 14.7%에 불과했다. 성교육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체육, 생물, 도덕 등 관련 과목시간을 빌려 더부살이하거나 재량활동시간을 활용하는 게 고작이었다.

반면 일본은 정규 보건과목을 통해 연간 70시간 이상 성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와 보건의료 체계가 비슷한 미국의 경우 1910년 '보건'을 독립교과로 분리했으며, 현재 43개 주에서 보건교과를 통해 체계적인 성교육을 하고 있다. 미 정부는 1980년대 들어 10대 임신과 에이즈 감염자가 급증하자 유치원 과정부터 성교육을 의무화했을 정도다.

성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자명하다. 요즘 아이들은 만 14세 정도만 되면 어른과 동일한 신체 상태를 보인다. 육체적 성장속도는 이렇게 빠르지만, 정신적으론 육체적 충동을 조절할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성충동이 많이 생기는 연령대의 아이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음란물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성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매우 높아진다. 실제 통계를 봐도 아동 성폭력 가해자의 30% 가량이 미성년자이다.

본보 취재팀 조사에서 최근 1년간 성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들의 음란물 경험비율은 66.8%로, 성교육을 받은 학생들(47.8%)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성교육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본보 기사에 대해 많은 분들이 의견을 보내왔다. 서울의 한 중학교 보건 교사는 인성 개발에 꼭 필요한 교육인데도 점수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푸대접 받는 현실을 이렇게 전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성교육만 안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씨랜드 화재참사 같은 사고가 있으면 안전교육 하라고 공문이 내려옵니다. 학교에서 각자 알아서 1년에 몇 시간씩 하라고. 청소년 흡연율이 높아지면 공문이 또 내려옵니다.

흡연교육 일년에 몇 시간씩 알아서 하라고. 여건이 안 되는 대부분의 학교는 다들 알아서 문서상으로만 합니다. 실질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데도 교육부는 항상 잘되고 있다고 발표를 하죠. 문서상으로는 완벽하니까요."

학교에서 성교육을 담당하는 보건 교사들은 정규 성교육 시간 확보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대다수 학교들은 입시와 무관한 성교육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식이다. 매번 '시간동냥'을 해서 산발적으로 이뤄지는 성교육이 충실하게 진행될 리가 없다.

경남 밀양에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직후인 지난해 1월 보건교과 신설 등의 내용을 담은 학교보건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교육계 내부 갈등으로 표류 중이다. 관련교과 교사들이 현행 교육과정으로도 충분히 성교육을 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교원평가제나 대학 구조조정과 같은 굵직한 이슈를 둘러싼 갈등은 일면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지만,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놓고 벌어지는 집단이기주의는 씁쓸하기만 하다.

고재학 기획취재팀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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