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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프리가 만난 사람 - 역사소설 쓰는 수의학 교수 임동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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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프리가 만난 사람 - 역사소설 쓰는 수의학 교수 임동주씨

입력
2006.11.09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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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영웅들이 방송의 황금 시간대를 점령했다.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등 멀게는 2,000여 년 전 이땅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딴 제목의 드라마에서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가히 ‘TV 삼국시대’라고 할 만하다.

역사의 소유권을 뒤흔드는 중국의 ‘동북공정’ 의도가 노골화하는 것과 때를 맞춰 등장한 한반도 삼국시대에 대한 관심은 비단 방송 드라마에서만이 아니다. 역사 소설 쪽에서도 그들을 조망하는 작업이 뜨겁다.

총 11권의 대하장편소설인 <우리나라 삼국지> 를 비롯해 <고구려를 세운 주몽> , <주몽의 아들 유리왕> , <천하의 영웅 연개소문> , <발해를 세운 대조영> 등 소설 형식의 삼국시대 인물전이 서점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필자를 보니 모두 같은 사람이다. 이름은 임동주(林東主ㆍ53). 문단에서나 사학계에서나 그리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누구이길래 이렇게 일관되게 우리의 삼국시대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았다. 1992년 4월 8일자 본보에 같은 이름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었다. 일단 기사의 제목을 간추리면, ‘이런 직업 아시나요-어항 속 미인의 고통 해결사-물고기 치료사 임동주’이다.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다. 설마, 동명이인이겠지. 일단 전화로 확인에 들어갔다. 그러나 동명이인이 아니었다. 물고기 치료사 임동주씨와 역사소설가 임동주는 같은 인물이었다.`

임동주씨의 명함은 복잡하다. 서울대 수의학과를 졸업한 수의사이다. 수의학 중에서도 관상어 부문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개척자로 서울대에 초빙교수, 삼육대에는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마야무역상사와 도서출판 마야를 운영하는 사업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재야사학자 겸 작가이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사다 주신 <삼국지> 를 밤새워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 그것이 우리나라 삼국지가 아닌 중국의 삼국지라는 것을 알았지요. 일종의 분노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후 시중에 나가 우리나라 삼국지를 찾아 보았는데 내용이 너무 빈약하고 사대주의사상에 입각한 것이 대부분이더라구요.”

그 때부터 우리 삼국지에 대한 관심이 싹텄다. 어릴 적부터 자료를 준비하다가 11년 전인 1995년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갔다. 지난 해 <우리나라 삼국지> 1권 출간을 시작으로 올 여름 11권 전권을 완간했다. 이어서 학생들이 보기 쉽도록 쓴 인물편을 계속 내고 있다.

<우리나라 삼국지> 는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니라 소설의 형식을 빌린 역사서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우리 삼국시대를 통사형식으로 다룬 책으로는 처음이다. 102장, 3,600쪽의 분량으로 주몽이 졸본 땅에 고구려를 창업하는 것에서 시작해 신라의 삼국통일과 발해의 건국으로 삼국의 형태가 변한 서기 720년까지 800여 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 등장인물만 1,200명이 넘는다.

임동주씨는 특히 고증에 신경을 썼다고. 삼국유사, 신당서, 구당서, 수서, 남제서, 송서, 일본서기, 자치통감 등 방대한 자료를 밤을 새며 읽었고, 고증이 틀렸거나 불명확한 부분은 과감하게 내용에서 제외를 시켰다.

“책을 쓰기 시작한 지 4년만에 4편까지 완성했는데 고증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깝지만 어떡합니까. 원고를 다 불에 태워버렸지요.”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삼국지> 에는 기름기가 없다. 역사 소설에 흔히 도입되는 과장된 판타지나 극단적 민족주의는 물론 사대주의와 식민사관의 냄새도 나지 않는다. 차분하고 재미있게 삼국의 역사를 정리할 수 있다.

임동주씨가 가장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은 고구려의 영양왕이다. 영양왕은 수나라 문제의 30만 대군을 막아내고, 이어 양제의 113만 수륙군을 살수에서 궤멸시켜 수나라의 멸망을 앞당긴 왕이다.

“영양왕은 조선까지도 나라에서 제사를 지낸 고구려의 제왕입니다. 땅을 넓힌 광개토대왕이나 진흥왕도 조선의 제사를 받지는 못했지요. 수의 양제가 113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을 때 보급부대나 군대를 따르는 민간인까지 합치면 300만은 족히 됐을 것입니다. 중국 대륙 인구의 거의 10%가 쳐들어왔는데 이를 물리친 왕이 바로 영양왕입니다. 을지문덕 장군의 공도 크지만 전쟁을 총지휘한 영양왕의 공로가 으뜸이라고 봐야지요.”

어려서부터 역사에 관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의학을 전공으로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중학교 시절 집에서 한 쌍의 거위를 키웠습니다. 거위 부부는 유난히 금슬이 좋았어요. 어느 날 수놈이 갑자기 죽었는데 이후 암놈은 식음을 전폐하다 마침내 보름 후 수놈의 뒤를 따랐습니다. 인간의 사랑보다 숭고한 금수들의 사랑, 그리고 왜 죽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수의학도의 길을 가게 만들었죠.”

관상어 연구가로 사업가로 그리고 사학자 겸 작가로 바쁜 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대작을 쓸 엄두를 냈는지 물었다.

“주로 밤을 이용합니다. 낮에는 전화 받으랴 뭐하랴 해서 좌정해 글?보거나 쓸 수가 없어요. 주로 새벽 2시부터 6시까지는 꼭 책상에 앉아 있습니다. 잠은 초저녁에 조금 자고 낮잠도 한 두 시간 자지요. 글 쓰는 재주야 독자들이 평가하시겠지만 글 읽는 재주는 남보다 조금 뛰어납니다. 책을 빨리 읽는 편이죠. 쉬운 내용의 책은 하루 16권까지 읽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자신이 쓴 책과 같은 시대를 다루어서인지 TV에 넘쳐 나고 있는 삼국시대 드라마에도 관심이 많다. 그러나 조금 실망스럽다.

“드라마가 작은 사실(史實)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기는 하지만 고증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역사를 국민에게 가르치는 결과를 낳습니다. 드라마 <주몽> 을 예로 들면 한나라의 군사로 철기군이 등장하는데, 당시의 한나라군은 두루마기나 걸친 농민군들이 대부분이었지요. 중국은 역사상 철기군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거북선을 이끌고 이순신장군과 싸왔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드라마 작가들이 잘못된 텍스트를 선택해서 나온 결과인 것 같습니다. 역사를 자신있게 공부하지 않았으면 역사를 써서는 안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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