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이후 미국과 야당은 “개성사업 투입 자금을 북한이 군사비로 전용한다”는 논리로 사업중단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꿋꿋이 버텼다. 개성사업을 한번 중단하면 재개가 쉽지 않고, 남북관계에 미칠 악영향이 심대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미국 등의 주장을 반박할 논거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북한 노동자에게 책정된 월급의 70%를 현금과 물품으로 지급한다’는 북측의 설명을 다시 전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래서 논란은 가시지 않고, 개성사업은 궁지에 몰렸다.
그런데 통일부의 무감각과 무성의가 이 같은 상황을 자초했음이 최근 드러났다.
사연은 이렇다. 7일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에게 생필품을 공급하는 고려상업합영회사의 문서가 일부 언론에 공개됐다. 남측 기업이 북측에 건네는 임금이 북측 관리기관을 거쳐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의 생필품 구매에 쓰인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 문서였다. 이대로라면 개성공단 임금의 군사비 전용 주장은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다.
문제는 통일부가 그 동안 여러 차례 이를 확인할 기회를 잡고도 흘려버렸다는 점. 합영회사 관계자는 통일부측에 자신들이 개성 시내에서 북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물품을 판매한다는 사실도 알렸다고 한다. 통일부가 조금 더 촉수를 세웠더라면 회사측 업무를 확인하고 개성공단 임금 흐름을 파악해 초기에 개성사업 논란을 잠재울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해 논란만 연장된 셈이다.
특히 통일부는 열흘 전 관련 문서를 제보 받고도 미적거렸다. 언론이 내용을 보도한 후에야 당국자를 기자실에 보내 “그게 맞다”고 했다. 전형적인 ‘뒷북 대처’다.
입으로는 개성공단 사업에 사활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통일부이지만, 몸은 영 따로 놀고 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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