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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허영의 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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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허영의 용도

입력
2006.11.0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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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증권의 고객이신 OOO씨는 이태원 길모퉁이에서 코지코너(Cozy Corner)라는 레스토랑을 하십니다. 직원 사이에서는 미인 사장님이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책 많이 읽는 사장님으로 통하지요."

한 시사주간지에서 맞닥뜨린, 삼성증권 광고 카피의 첫머리다. 보기에도 숨막힐 정도로 빼곡한 책들 사이에 서서 여성 모델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가운데쯤, 그녀의 오른쪽 팔꿈치를 살짝 가린 채 쌓여 있는 책 다섯 권의 제목이 유난히 또렷하다. 다른 책들의 제목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광고 제작자가 이 다섯 권의 책에 포인트를 주려 했음이 분명하다.

● 증권광고로 쓰이는 반자본주의자들

위에서부터 차례로 <스콧 니어링 자서전> , <바가바드기타> ,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 <프란츠 파농> , <닥터 노먼 베쑨> 이다. 증권회사 고객의, 다시 말해 증권투자자의 독서목록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겠으나, 이 광고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책들이 증권의 세계와 그리 어울려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힌두교 경전이나 괴테의 여행기야 시공을 뛰어넘은 '교양서'라 치자. 그러나 스콧 니어링, 프란츠 파농, 노먼 베순이라니. 외과 의사 베순과 정신과 의사 파농은 각각 중국혁명과 알제리혁명의 한복판에서 제 삶을 소진시켰다. 경제학자 니어링은 평화주의적 견해 때문에 주류사회에서 계속 내쳐진 끝에 만년을 '독립 농부'로 산 생태주의자다.

이들은 제가끔 서로 다른 세계관을 지니고 살았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일치했다. 이들 모두는, 적어도 생애 후반부엔, 어기찬 반자본주의자였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이 자본주의의 가장 뜨거운 상징이라 할 증권회사 광고에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지난 세기 저물녘부터 손에 먹물 묻힌 자들이면 한 마디씩 거들곤 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걸까? 그런 것 같진 않다. 한 때는 반자본주의의 상징이었던 이름들을 자본주의 찬미에 써먹는 이 광고의 너그러운 우아함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삼켜버리는 자본의 먹성을, 이념과 체제의 전선에서 자본주의가 거둔 '최종적' 승리를 보여주는 것일 테다. 이 반항자들의 이름은 이 이름들이 저주했던 세계자본주의의 평안에 이제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외려 그것은 상품이나 기업의 이미지에 기품과 순정함을 부여하는 소도구로 봉사한다. 폭약이 제거된 파농이라는 이름, 베순이라는 이름, 니어링이라는 이름은 이 난만한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그저 하나의 스타일로 소비되는 것이다.

소비되는 스타일로서 이 이름들보다 훨씬 많이 팔려나간 것이 체 게바라일 게다. 그의 얼굴이 박힌 티셔츠를 입고 그의 평전을 옆구리에 낀 채 거리를 활보하는 청년들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좌파를 자임하는 지식분자는, 극우신문의 지면을 빌려, 게바라의 '진정성'을 본받아야 한다며 이 청년들을 계도한다. 자본은 이 모든 것을 그냥 놓아둔다. 게바라 티셔츠를 입은 거리의 청년들이든 극우신문에 얼굴을 들이미는 좌파 지식분자든, 그들에게 게바라가 스타일 이상은 아니라는 걸 자본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모든 걸 먹어치우는 자본의 허영

반자본주의적 이름들을 마스코트나 장신구로 삼아 소비하는 자본주의의 허영이 꼭 눈살을 찌푸릴 일만은 아니다. 응용심리학 전문가들이라 할 광고제작자들까지 군침을 흘릴 만큼 이 '불온한' 이름들이 끊임없이 소비된다는 것은, 가장 탐욕스러운 자본주의형 인간도 내면 한 구석에 공동체적 정의감각이나 생태주의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음을 뜻한다.

유럽의 한 모랄리스트는 위선을 "악이 선에게 바치는 경배"라 정의했거니와, 증권회사 광고에 등장하는 <스콧 니어링 자서전> 이나 탈정치 세대가 걸친 티셔츠 위의 게바라 얼굴도 '자본주의적인 것'이 '자본주의 아닌 것'에게 건네는 경배라고 볼 여지가 있다. 그것이 인류의 가느다란 희망이다. '자본주의 이후'를 모의할 의지와 지혜는 바로 이 허영에서 나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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