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11월. 당시 현대 소속의 박진만은 삼성과 4년간 39억원의 메가톤급 FA 계약에 성공한 뒤 한 동안 ‘먹튀’ 논란에 휩싸여야 했다. 수비 솜씨 하나로 당시로서는 역대 FA 내야수 중 최고액을 받았으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했다. 설상가상 박진만은 이적하자마자 부상을 당했다. 시즌 초 박진만의 공백을 메우던 김재걸마저 기대 이상으로 활약하자 곳곳에서 한숨이 흘러 나왔다.
# 11년간 6번 우승…"김정수 선배 8번 기록 깰것"
꼭 2년이 흘렀다. 이제 파란 유니폼이 어색하지 않은 박진만은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고 MVP를 거머쥐었다. 공ㆍ수에 걸친 맹활약이었지만 사실상 결정적인 수비로 받은 MVP였다. 박진만의 ‘명품 수비’는 39억원, 그 이상이었다.
9일부터 시작되는 제2회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에 출전, 또 하나의 우승컵에 도전하는 ‘우승 청부사’ 박진만(30ㆍ삼성)을 출국 직전에 만났다.
큰 무대에서 만들어진 명품 수비
지난 3월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미국과 멕시코 대표팀 감독은 가장 눈에 띄는 한국 선수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이름은 모르지만 유격수”라고 입을 모았다.
박진만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으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큰 무대에 서니 긴장이 됐지만 자신감이 붙었어요. 시드니 올림픽 이후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시야가 넓어졌죠. 그 때부터 수비 잘 한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요.”
박진만은 중학교 시절까지 투수였다. 팔꿈치가 좋지 않아 인천고에 진학하자마자 유격수로 포지션을 바꿨다.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적성에 맞았다.
“상대 타자에 대한 데이터를 준비하는 건 투수 뿐만이 아니에요. 타자들의 성향과 타구 방향을 미리 감지하고 시프트를 하죠. 그러기 위해선 숱한 경험과 노력이 필요하구요.” 박진만의 말에 이번 한국시리즈의 수비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공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야구를 할 줄 아는 선수
삼성 선동열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박진만은 야구를 할 줄 아는 선수”라고 극찬했다. 처음에는 수비만 좋은 선수라고 생각했지만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이 있고, 야구 센스가 탁월하다는 것이었다.
박진만은 한국시리즈에서 타율 2할8푼(25타수 7안타)에 2타점, 4득점을 올렸고, 4차전에서는 결정적인 도루도 성공했다. 페넌트레이스에서도 팀 내에서 양준혁에 버금가는 최고 타자였다. 홈런(11개), 타점(65개), 장타율(0.432) 모두 양준혁에 이어 팀 내 2위였다. 선 감독의 ‘지키는 야구’의 숨은 주역이었다.
“‘반쪽 선수’ 소리를 듣지 않기 3, 4년 전쯤부터는 타격 쪽에 비중을 많이 뒀어요. 현대 시절 김용달 타격 코치님의 도움이 컸죠.”
진정한 우승 청부사
가장 기억에 남는 우승을 물었다. “2004년 현대 시절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죠. 그 때 9차전에서 실책을 해서 졌으면 역적이 될 뻔했는데 이겨서 다행이었어요.” 당시 박진만은 8-6으로 쫓긴 9회 말 2사 1, 2루에서 신동주의 평범한 내야 플라이를 놓치는 ‘대형 사고’를 쳤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물에 시야를 가려 타구를 놓친 탓이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최다 경기 출전 기록(45경기)이 말해주듯 박진만은 ‘KS의 사나이’다. 96년 현대에서 데뷔한 후 프로 11년 동안 무려 7차례나 한국시리즈에 올랐고, 이 중 6번이나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심정수와 함께 최근 4년 연속 우승을 일궈낸 진정한 ‘우승 청부사’다.
박진만의 욕심은 끝나지 않았다. “역대 최고가 8번이라고 들었는데 그 기록을 꼭 깨고 싶어요.” 프로야구 역대 최다 우승반지를 보유한 김정수(KIA 코치)를 뛰어넘겠다는 얘기였다. 물론 코나미 우승컵과 도하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겠다는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도쿄=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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