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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서 예방활동 펼치는 남아共 그레일링 목사 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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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서 예방활동 펼치는 남아共 그레일링 목사 내한

입력
2006.11.0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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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에 감염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결혼을 하고 건강한 아이도 낳았습니다. 전세계 3,800만명의 감염인들도 모두 저와 같이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월드비전에서 만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크리스토 그레일링(42) 목사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에이즈에 감염되면 으레 음지에 숨어 남들의 시선을 피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아프리카 성직자 네트워크(ANERELA+)’ 부회장으로 아프리카와 동유럽, 남미를 누비며 에이즈 예방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가 6일 한국을 찾았다.

“처음 감염 사실을 알았을 때는 장래의 모든 꿈이 무너지는 줄 알았죠.” 혈우병을 앓고 있던 1987년 수혈을 받은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그는 목회자의 길을 앞둔 신학생이었다. 의사는 “길어야 앞으로 1년 정도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레일링은 “갑작스레 닥친 죽음의 공포가 너무나 두려웠다”고 회상했다.

그레일링은 당시 6개월째 교제 중이던, 지금의 부인 리젤(42)에게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감염 사실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리젤을 통해 오히려 삶을 향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인은 “처음에는 남편과 마찬가지로 큰 충격을 받았어요. 하지만 우리의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해서 그에 대한 사랑마저 포기할 수는 없었지요”라고 말했다. 의사인 그레일링의 형이 리젤에게 에이즈 환자의 흉측한 사진을 들이대며 헤어질 것을 종용하기도 했지만 리젤은 끝까지 그레일링을 믿었다.

그러나 수군거리는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때문에 그레일링은 한동안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고 에이즈 예방 상품을 홍보하는 보험사 직원으로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고심 끝에 1992년 교회 집회에서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다행히 주위 사람들은 그의 용기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 그레일링이 에이즈 예방활동에 나서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수년간의 약물치료도 성공적이었다. 부인 리젤에게는 HIV 양성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레일링의 바이러스 수치가 낮아져 가족에게 에이즈가 감염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진단을 받고 난 후 부부관계를 가졌다. 지금 이들 부부는 네 살, 두 살 난 건강한 두 딸을 키우고 있다.

그레일링 목사는 에이즈는 조류독감과 같은 전염병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병(病)보다 힘든 것은 사회의 편견이었다”며 “감염인이라는 낙인을 찍고 차별ㆍ격리하려는 잘못된 인식부터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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