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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우정편지] 시인 박형준이 시인 장민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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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우정편지] 시인 박형준이 시인 장민하에게

입력
2006.11.0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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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를 꿈꾸던 그때… 20년후 돌아온 편지

日誌 - 1

눈물같은 들풀을 꺾는다 손금 많은 바람들이

맑은 이마를 가리고 먼 데 술집 풍차의 흐린 불빛을

본다 허름한 그곳에서 생선비늘같은

사람들과 설을 맞는다 투명한 목울음이 흐르는

강가에 앉아 은어떼처럼 거슬러 오르는 詩를

쓰고 싶다 오랫동안 나는 술을

마신다 가면을 쓴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걸어나와

횃대에 앉은 나의 닭 목을 비트는 꿈을 꾸는 새벽까지

1985年 2月 19日

日誌 - 2

정희야 오늘은 춥다

오십만원 돈 가슴에 안고 등록금 납부하는 날

목울대 가득히 깨꽃이 밀려왔다. 그리운 이들의

가슴 그렸다 어디론가 떠밀려가는 나의 섬, 떠도는 자

의 물풀처럼 나는 도심의 빨간 바다를 낯설게 건너왔다 문

득 뒤돌아보면 방안 가득히 자학과 자위로 혼자 노는 법을

익힌 강이 불투명하게 흘러가고 있다. 희고 고운 앞집 순이

의 치아처럼 고향 텃밭의 깨꽃들이 맑게 피어났다

차츰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1985年 2月 22日 형준

붙임: 仁川에 올라오면 연락 한번 해라 잘은 못해주더라도 따뜻한 가슴으로 만나고 싶다 편지도 한번쯤 해주고.

♡ 김다은의 우체통/ 고교문예대회서 만나 고민 나눠

‘형준’과 ‘정희’(장민하의 본명)는 1984년 인천대 주최 고교문예대회 수상자들로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시에 대한 고민을 나눌 친구”를 열망하며 한동안 편지를 주고받는다. 여기 소개된, 두 날짜가 적힌 한 통의 편지는 85년 서울예전에 합격한 ‘형준’이 재수생 ‘정희’에게 보낸 것이다.

편지를 구실삼아 ‘형준’은 日誌, 매일 말로 뜻을 세웠다. 日誌 1은 ‘을/을, 은/는 이/지’같은 각운을, 日誌 2는 ‘떠도는 자/의, 문/득, 순이/의’같은 문법과 행의 단절을 통해 “떠도는 자”의 운율을 표현하고 있다. 10대 끝자락에서, ‘형준’은 편지라는 도가니에 펜 끝을 달구며 시를 담금질 했던 것이다.

20년을 훌쩍 뛰어넘어 장민하가 편지들을 내놓자, 박형준은 “병에 넣어 물에 띄운 편지”가 “멀리 시간의 바다를 향해 떠났다가 내게 돌아온 엉뚱하고 신비로운 느낌”이라고!

소설가ㆍ추계예술대 교수 김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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