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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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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입력
2006.11.0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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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권제도를 제3세계에 수출하겠습니다.”

독선적 행보에 대한 비판 여론, 내부 직원의 금품수수에 따른 도덕성 추락, 전임 위원장의 중도 사퇴. ‘인권의 최후 보루’임을 자임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현주소다. 잇단 악재 속에 흔들리는 인권위를 두고 인권위 무용론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는 안경환(58) 신임 위원장의 말에는 흠집 난 조직에 대한 진한 애정과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는 취임 일주일 만인 6일 인권위에서 가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유럽 등 인권 선진국의 제도를 받아들이기만 했던 수용자 입장에서 벗어나 우리의 압축적인 인권발전을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연내에 합의된 의견을 도출하겠다”며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 외부의 비판에 대해 경직된 자세로 일관했던 인권위의 기존 입장을 탈피, 조직 안팎의 적극적 변화를 꾀하겠다는 일성이었다.

_한국의 인권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인권은 마침표가 없는 영원한 과제예요. 현재 우리의 인권 상황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통사적으로 살펴볼 때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자평합니다. 특히 자유권 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개선이 있었어요. 하지만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가 지적했듯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 국가보안법 개정 문제 등 과제도 많습니다. 차별 관행의 시정이나 사회적 약자 보호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_인권위가 내놓은 국가인권기본계획(NAP)이나 각종 차별금지 권고안이 너무 앞서간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인권위의 본령은 사회의 비판과 충고에 귀 기울이면서 독립기관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의견수렴을 통해 당당하게 입장을 밝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권위 결정에 대해 견해가 엇갈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나 표현에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_취임사에서 밝힌 “인권 신장을 위해서 때때로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배양해야 한다”는 언급을 인권위의 방향 전환으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는 투쟁과 대립이 미덕으로 통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합의와 토론을 통해 이견과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소하는 일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인권위도 사회적 합의와 합리적 대안 도출, 인권 관련기관과의 협력적인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저는 이것을 ‘실천적 지혜’라고 부릅니다. 인권이라는 가치와 원칙은 지켜나가되 전략적 목표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합리적이며 유연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_인권위의 유연화와 함께 위상 제고도 절실한데요.

“이미 정부부처 관계자가 참여하는 인권정책관계자협의회 등을 통해 권고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방안을 논의 중입니다. 또 법령ㆍ정책 입안 과정에서 인권을 하나의 상수로 고려하는 풍토가 확산될 수 있도록 공직 사회를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도 활발히 해나갈 계획입니다.”

_취임 이전과 이후의 인권위는 어떻게 다른가요.

“언론보도만 접하고 인권위가 지금까지 상당히 잘못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인권위는 5년 간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법령 및 제도의 정비라는 성과를 냈고, 차별 사례들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도 제시했습니다. 기대 이상으로 잘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다만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국민들의 높은 기대치에 비해 성과가 충분치 않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같은 비판은 인권위가 국민 속의 인권전담기구로 확고하게 자리잡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_그 진통에는 조영황 전 위원장의 중도 사퇴로 불거진 내부 갈등도 있었습니다.

“취임하고 기록을 살펴보니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업무 공백을 겪거나 몸싸움을 한 사실이 전혀 없어요. 반목으로 비쳐진 이유가 납득이 안갑니다. 인권위는 기본적으로 합의제 기구입니다. 다양한 배경과 성향을 가진 위원들이 자유로운 토론과 의사 조율을 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지요. 이런 점이 외부에는 내분이 있는 것처럼 확대 해석된 측면이 큽니다.”

_그래도 혹 그런 문제들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입니까.

“저는 여러 위원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 토론문화에 익숙합니다. 어떤 비판이나 의견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열린 마인드가 장점이라면 장점이지요. 비온 뒤 땅이 더욱 단단해지는 것처럼 성숙한 소통문화를 정립하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행동으로 보여 드릴 테니 한 번 지켜봐 주십시오.(웃음)”

_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표명을 두고 보혁 사이에 갈등이 있습니다.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합니다. 국감에서도 드러났듯 ‘독립된 주권국가’냐 ‘대한민국의 영토’냐를 놓고도 시각이 엇갈려 어느 하나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 같은 사안의 복잡성 때문에 관련 소위원회를 마련해 놓고도 3년 이상의 검토와 연구 기간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인권은 이념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가진 개념입니다. 보수ㆍ진보라는 이분법의 잣대가 무의미하다는 소리예요.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하려 합니다. 심도 있는 논의를 토대로 연말까지는 공식입장을 밝히겠습니다.”

_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안 위원장이 서울대 총장 출마를 위해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비상임위원직을 사퇴한 사실을 비판하고 있는데요.

“표면적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학자로 있으면서 사회문제에 오래 전부터 관여해온 터라 대법원 추천으로 과거사위에 들어갔어요. 다만 선거에 나가는 사람이 직위를 갖고 있으면 기관에 누가 된다고 생각해 기관장과 상의한 뒤 그만둔 것입니다. 그동안 공직 제의를 사양한 적이 더 많습니다. 인권위 위원장직은 ‘이런 시기에 당신이 피하면 비겁한 일’이라는 주변의 질책성 권유와 나름의 자부심이 있어 수락했습니다.”

_임기 중에 특별히 역점을 두고 싶은 분야가 있으신지요.

“국제화입니다. 인권위가 비판적 입장에 치우친 것은 인권을 등한시해 온 지난 날의 뼈아픈 경험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제 기준으로 볼 때 경제성장 만큼이나 인권문제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가 있었지요. 한국 만큼 단시일 내에 경제성장과 민주화, 인권신장을 동시에 이뤄낸 나라를 한 번 찾아 보세요. 지금은 우리가 이룬 인권 성과를 국제사회에 내보이고, 전수해 주는 작업이 더 필요한 시점입니다.”

_구체적인 방향이나 계획이 있습니까.

“이미 가동 중인 국제협력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특히 인권 후진국이라 할 수 있는 제3세계 지역으로 눈을 돌리려 합니다. 내년부터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체계를 만들어 나갈 생각입니다. 또 아시아ㆍ태평양 국가인권기구포럼(APF) 같은 국제협의체를 통해 우리의 인권상황을 홍보하고 이들 지역의 인권지도자를 초청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대담= 이은호 사회부 차장대우 leeeunho@hk.co.kr정리= 김이삭기자 hiro@hk.co.kr

■ 문학·예술 매개로 글쓰기 활발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은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이름이 높다. 헌법학자로서 그는 법을 일컬어 ‘제도화한 지적 기생(妓生)’이라고 했다. 법전에만 갇혀 있는 법은 무용지물이란 의미다. 수많은 저술활동과 언론 기고, 참여연대 운영위원장과 아름다운재단 이사 등 그가 걸어온 길은 ‘법의 대중화’란 그의 신념을 뒷받침해 주는 훈장과도 같다.

특히 문학과 영화 등 문화ㆍ예술을 매개로 한 글쓰기는 그가 사회적 텍스트를 대중과 공유하는 주요 수단이다. 안 위원장은 “문화야말로 이 시대에 대중이 지성과 소통할 수 있는 최적의 통로”라고 말한다. 한 언론에 연재한 <법과 문학사이> <법과 영화사이> 란 문화 에세이는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형사법 논리와 인권문제를 유려한 글솜씨로 풀어낸 명칼럼으로 각광받았다.

그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현재 사법개혁의 핵심 현안으로 떠오른 국민참여 배심제와 공판중심주의의 필요성도 역설해 왔다. 안 위원장은 “법원 판결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이유는 국민의 참여 기회를 배제하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배심제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재판의 공정성 확보와 수용자 만족도 제고를 위해 국민 스스로 책임감을 갖게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약력

▲1948년 서울 출생 ▲70년 서울대 법대 졸 ▲84년 미국 산타클라라대 법학박사 ▲83~87년 미국 변호사 ▲87년~현재 서울대 법대 교수 ▲95, 96년 서울대 기획실장 ▲2001, 2002년 한국헌법학회장 ▲2002, 2003년 전국법대학장연합회장 ▲2002~2004년 서울대 법대학장 ▲2002~2004년 법무부 정책위원장 ▲2004년 교육인적자원부 대학자율화ㆍ구조조정위원장 ▲2003년~현재 아시아ㆍ태평양 국가인권기구연합회(APF) 자문위원 ▲2006년 10월 제4대 국가인권위원장

김이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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