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개월만에 짓다니… 남광토건, 최고!"
“남광, 오 멜료르!”(NamKwang, O melhor!ㆍ 남광 최고다)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 서울로 치면 1970~80년대 막 조성중인 강남쯤에 해당될 법한 탈라토르 지역에서 만난 경비원 파울로 산토스(27)씨는 “치네스(Chinesㆍ중국인)인가”라고 묻더니, “꼬레아노(Koreano)”라는 대답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이렇게 말했다.
인구 300만명으로 추정되는 루안다 시내에서 한국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것들은 적지 않다. 1인당 국민소득이 1,600달러(지난해 기준)에 불과한 나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리엔 최고급 외제차가 넘쳤다. 현대자동차의 테라칸과 아토즈가 쉽게 눈에 띄는 것도 가슴 뿌듯했다.
낡은 아파트 건물의 외벽에 달라붙은 에어컨 상표의 대부분은 일제 ‘샤프’가 아니라 LG였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꼬레아의 인지도를 결정적으로 높인 것은 진출한 지 불과 1년을 갓 넘긴 남광토건이다.
남광토건이 루안다에 첫 밟을 디딘 것은 지난해 8월. 앙골라 석유공사인 소낭골사로부터 루안다 시내 5만여평의 대지에 건평 2만5,000평 규모의 초대형 컨벤션센터(약 6,000만 달러 규모)를 짓는 공사를 수주한 것.
그러나 주어진 공사기간은 겨우 8개월. 올해 4월 23일 루안다에서 개막된 아프리카 석유성장관 회의 장소로 쓰일 예정이어서 하늘이 두쪽 나도 기간내에 완공해야 하는 프로젝트였다.
앙골라에서 대형공사를 도맡아 하는 포르투칼계 건설업체를 비롯, 브라질, 남아공 업체들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해외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한국 업체들도 선뜻 맡으려 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규모라면 자재와 전문 기능공들이 풍족한 한국에서도 15개월~20개월은 족히 걸리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고심하던 남광토건은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나 해외 건설 경험이 없었던 탓일까. 현지조사를 해보니 기능공은 고사하고 못 하나도 앙골라에서 구할 수 없었다.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빚더미에 올라앉을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해외사업본부 전병환 상무는 “멀리 보자. 적자가 나더라도 남광의 자존심을 걸고 반드시 공기 내에 완공하자”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비상 수단이 동원됐다. 무려 500여명의 한국인 기능공을 공수, 작업현장에 투입했다. 망치, 페인트, 에스컬레이터 등 모든 기자재를 한국에서 가져왔다. 배에 실으니 컨테이너 40피트 짜리 400여개 분량이었다. 35~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 24시간 쉬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식 ‘빨리 빨리’로 일관했다. 또 비용은 많이 들지만, 최고급 음향시설과 건물자동화시스템, 주차시스템 등 최신식을 고집했다. 내부가 투명하게 들여다 보이도록 건물 외벽을 모두 유리로 장식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회의 개막식을 이틀 앞둔 4월 21일 준공식을 치를 수 있었다. 유리로 된,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앙골라 최초의 건물이 탄생한 것. 석유사업을 맡아 이 나라의 돈줄을 쥐고 있는 발주처인 소낭골측은 감동했다. 공기를 맞춘 것도 그렇거니와, 건물 또한 서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적자를 감수하고도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에 “기적 같은 일이다. 남광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며 탄복했다.
소낭골은 27년간의 내전이 끝난 뒤 2002년부터 루안다 시내 50여곳, 인근 주변까지 포함할 경우 100여곳의 공사를 포르투갈과 브라질계 등 회사에 맡겼지만 라틴계 특유의 ‘만만디’ 때문에 아직 완공된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발주 건물 가운데 가장 빠른 시일내에 최초로 이를 완광시킨 남광의 8개월 스토리는 그래서 더욱 돋보였다.
탈라토라 컨벤션센터(CCTA)로 이름 지어진 이 곳은 루안다 시민들이 구경을 올 정도로 금세 명소가 됐다. 정부 각 부처는 물론 군부, 대학에서도 “우리도 ‘유리로 된’ 건물을 지어달라”는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루안다 중심가에서 가장 높은 21층 규모의 사무동 및 콘도 등 3개동을 짓는 쓰리타워 프로젝트(1억8,000만 달러)를 비롯, 10층 짜리 주차빌딩(6,000만 달러), 컨벤션 호텔(8,000만 달러), 인터컨티넨탈 호텔(1억8,000만 달러)의 발주가 쏟아졌다.
최근에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그해 1월 루안다에서 열리는 아프리칸스컵 축구대회를 위해 5만석 규모의 스타디움(3억 달러)을 건설해 달라는 요청도 들어왔다. 루안다의 스카이 라인을 바꿀 건물들이다. 남광토건 최병원 루안다 소장은 “1년이 조금 넘었는데, 5억불이 훨씬 넘는 금액을 따냈다”며 “솔직히 일감이 너무 쏟아져 서울 본사에서 고심하고 있을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물론 화려한 성적 이면으로는 어려움도 적지 않다. 인프라가 거의 갖춰져 있지 않은데다, 아직도 치안이 불안하기 때문. 공사현장 터파기를 하면 수류탄이 나오고, 경찰과 무장 집단간의 총격전이 벌어져 공사장 안으로까지 총알이 날아들기도 한다. 더욱이 최근 내전 당시부터 혈맹 관계를 맺어온 중국의 회사들이 40억 달러가 넘은 자국정부의 차관을 무기로 공항 항만 신도시 등 주요 건설 공사를 독식하다시피하고 있다. 중국인 건설 인부는 5만명이나 들어와 있다.
그러나 최 소장은 “자신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품질로 승부할 겁니다. 조만간 현지인들을 교육시켜 기능공을 양성하는 트레이닝센터도 열어 기반도 다져나갈 생각입니다. 앙골라에서 잘하는데 아프리카 어디에서든 못하겠습니다.”
루안다(앙골라)=박진용 기자 hub@hk.co.kr
■ 데지에로 코스타 석유성 장관/ "한국기업 믿을만… 석유광구 입찰 환영"
“내년 앙골라 석유광구 입찰에 한국기업의 참여를 환영합니다.”
앙골라의 데지에로 코스타 석유성 장관은 “이 곳에서 해양 석유시추 설비와 관련한사업을 하고 있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신용도가 매우 높아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코스타 장관은 “석유광구 국제입찰의 성격상 한국기업에만 특혜를 줄 수는 없다”며 “다만 한국기업보다 좋지 않은 조건을 제시하는 쪽에 석유탐사권을 주는 일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앙골라는 아프리카 남서부 제2의 산유국. 이 나라 인근 심해 유전에서는 막대한 양의 원유가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엑슨 모빌이 심해 유전개발에 170억 달러를 단독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국제 오일 메이저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원유개발 분야에서 한국기업의 진출은 없는 실정이다.
때문에 산업자원부는 나이지리아에서처럼 발전소 등 플랜트를 지어주고, 석유광구를 확보하는 방안을 면밀히 검토중이다.
코스타 장관은 지난달 중순 방한, 현대중공업 및 삼성전자를 둘러보고, 한국석유공사와 상호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정부 및 기업에게 바라는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단순한 지원 보다는 기술을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령 자동차를 팔지만 말고, 정비나 생산기술도 함께 이전해 달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 정부가 정치적 관점에서도 앙골라의 체제나 입장을 존중해 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진용기자
■ 125m 건국 기념비 북한이 공사 '주체탑' 별명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1975년 독립을 기념하는 ‘건국 기념비’. 높아야 7~8층 정도가 대부분인 루안다 시내에서 이 기념비는 무려 125m나 치솟아 있어 한눈에 들어온다. 탑신 아래에는 앙골라 초대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한창 진행중인 기념비 건설 공사를 맡고 있는 곳은 놀랍게도 북한의 만수대건설이다. 철골 구조 공사를 마무리하고 꼭대기부터 외부에 화강석을 붙이면서 내려오는 중이었는데, 공정의 절반 정도 진행됐다고 한다. 현지의 한 주재원은 “북측 관계자들이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공법상 어려운 난공사이며, 내년 중에나 완공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초 이 기념비는 과거 소련측 건설회사가 수주했으나 소련연방 해체 이후 20년 가까이 방치돼오다가 얼마 전부터 북한측이 공사를 맡아 진행해 오고 있다. 때문에 현지에선 ‘주체탑’으로 불린다.
비동맹 외교를 강화해온 북한은 과거 냉전시절 한국보다 아프리카 외교를 중시, 각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특히 앙골라 시내를 비롯, 아프리카 각지에서 동상과 기념비를 다수 제작해 기술적 완성도와 예술성을 인정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주의 성향의 앙골라 정부와는 70~80년대 군사고문단까지 파견하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현재는 대사관이 철수, 인근 콩고 대사관에서 관할하고 있다. 이로인해 현지인들 사이에선 한국인을 보면 ‘노스 코리아’ 출신인가 묻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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