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중혁 '펭귄뉴스'/ "읽으며 낙서도 하는 소설 됐으면…"
“제 소설엔 여백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독자들이 읽으면서 밑줄을 치는 게 아니라 그냥 빈 공간에 낙서를 할 수 있는 그런 소설이요.”
<펭귄뉴스> 의 김중혁(35)씨는 <미션 임파서블> 의 첩보요원처럼 최첨단 기기들로 무장하고 나타났다. 메고 온 커다란 배낭 안에선 SLR 카메라와 MP3, PDA 등이 쏟아져 나왔고, 인터뷰 도중엔 수시로 기자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셔터를 눌러댔다. 사물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인간과 문명을 성찰해온 <펭귄뉴스> 의 작가다웠다. 펭귄뉴스> 미션> 펭귄뉴스>
“소가 뒷걸음질치다 쥐 잡은 격이에요. 그런 의도를 갖고 쓴 건 아닌데, 6년간 쓴 소설들을 다 묶어놓고 나니 사물에 관한 얘기더군요. 전 사실 쥐가 거기 있는지도 몰랐어요, 하하.”
첫 소설집 <펭귄뉴스> 로 올 한 해 평단의 주목을 받은 김씨는 1970년대에 태어난 89학번들의 역사적 위치에서 자기 소설의 뿌리를 찾았다. “저희는 첨단문명과 아날로그문명에 걸쳐져 있는 세대예요. 어떻게 하면 첨단과 아날로그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펭귄뉴스>
그의 재능과 관심은 글쓰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펭귄뉴스> 의 표지를 직접 일러스트한 그림 솜씨는 이미 동화 3권의 삽화가로 활약한 이력으로 증빙된 바 있고, 음식잡지와 여행잡지에서 일하며 연마한 사진실력도 상당하다. “전 집에서 놀 때가 제일 바빠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다가 오락도 하고 기타도 치고…. 그런데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은 소설을 위한 겁니다. 모두 제 감각을 확장시키는 작업이죠. 못 치는 기타를 자꾸 치려는 것도, 그림 그리고 디자인하는 것도 모두 그 안의 감각과 논리를 익혀나가려는 거예요.” 펭귄뉴스>
소설 쓰는 게 재밌다고, 한 번도 괴로웠던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그는 소설이란 자기가 동시대에서 느꼈던 것들을 글로 더듬더듬 찾아가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제가 평면에 밑그림을 그려놓으면 독자들은 그걸 3차원으로 재구성해 독해해요. 그 소통과 불일치가 재밌어서 누군가 제 책을 읽어주는 게 정말 행복합니다.”
◆ 심사평
사물을 통해 인간 바라보기 '독특'
<펭귄뉴스> 는 SF의 고전들이 미래사회를 그려냄으로써 현재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것처럼 예측 또는 상상 가능한 미래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여기를 성찰한다. 표제작 <펭귄뉴스> 는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미래사회에서 정치권력이 강요하는 단일한 비트(삶과 경험의 리듬)를 거부하고 다양한 비트를 찾고 만들려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이다. 펭귄뉴스> 펭귄뉴스>
김중혁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사물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다. 등장 인물들은 마니아 또는 편집증 등으로 분류될 수 있는 독특한 취향의 주체들이다. 인간중심주의가 문학의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전제였다면, 김중혁은 문학적 시선의 방향을 뒤집어 사물을 통해서 인간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내비게이션 시대에 지도를 이야기하고 초고속 열차가 다니는 시대에 자전거를 이야기하며 컴퓨터 글쓰기가 보편화된 현실에서 타자기를 이야기한다. 그는 사물에 대한 기억으로 세상과 맞선다. 새로운 매체나 사물이 낡은 것들을 대체하는 지점에서 일어났던 감각의 마비와 기억 상실에 대해서 이야기함으로써 취향의 무의식과 역사성을 동시에 포착하고 있다. 사물과 취향을 통해서 인간과 문명을 들여다보는 일, 언어 이전에 비트(존재의 소리)를 문제 삼고 인간보다는 사물을 문제 삼는 독특한 시선, 김중혁 소설의 현대성이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근대문학의 인간중심적 편향성을 비켜가면서 한국문학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동식
■ 윤성희 '재채기'/ "결국 소중한 건 삶의 곁가지들"
"달력을 받을 때마다 재미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좀 기발하게 만들면 안 되나. '침묵의 날' '고백의 날' 이런 걸 만들면 재미있지 않겠어요?"
유쾌하다. 엉뚱하다. 따뜻하다. 이 세 낱말은 <재채기> 의 작가 윤성희(33)씨를 구성하는 3대 필수성분이다. 그런 작가의 성격이 녹아든 <재채기> 는 어쩌다 뭉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고백의 날'의 기원을 찾는 과정을 그린 단편. 물론 이 날은 작가가 상상으로 만들었다. 재채기> 재채기>
"원래 이벤트를 좋아해요. 얼마 전엔 친구가 비싼 공연을 보여줘서 감동한 나머지 언제라도 윤성희와 데이트 할 수 있는 '무료 쿠폰'을 발행해줬어요. 결국 소중한 건 삶의 사소한 곁가지들인 것 같아요."
<재채기> 는 수다를 서사형식으로 도입한 독특한 실험이 이목을 끄는 작품이다. "정보를 잘게 쪼개 여기저기 심어주는 식으로 많은 서사를 교묘히 문장 안에 감춰보고 싶었어요. 그럼 독자도 머리 속으로 퍼져나가는 스토리를 짜맞추며 재밌게 읽어주지 않을까요. 진부한 소재도 진부하지 않게 하는 건 결국 문장이니까요." 재채기>
최근 작품이 '어른을 위한 동화' 같다는 평을 종종 듣는 그는 "그냥 내 주인공을 행복하게 해줘야지 하는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한 건데, 자꾸 그런 말을 들으니 빠져나가고 싶은 욕구가 든다"고 했다. "인간관계의 균열을 냉혹하게 보는 시선을 가졌으면 좋겠는데, 괜히 준비도 안된 반동을 했다간 망할 것 같아서 참고 있어요. 제 작품이 너무 안 변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옛날 작품 들춰보면 조금은 변한 것도 같거든요. 한 번에 확 변하지 못할 바에야 차근차근 많이 쓰면서 조금씩 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도 모르던,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일이 즐거워 소설을 쓴다"는 그는 "예전엔 주인공과 내가 대화를 했는데, 지금은 주인공이 독자와 어떤 대화를 할까를 더 많이 상상하며 글을 쓴다"고 했다. "70세까지 소설을 쓰려면 생활인의 자세로 써야 할 것 같아요. 폼 잡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면서요."
◆ 심사평
무질서 속에서 찾은 재미·따뜻함
<재채기> 의 전체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서사의 진행에 속도감을 더할 뿐 아니라, 그 문장들 간에도 비약과 단절이 심해 줄거리에 포함시켜야 할 정보의 양이 요약을 불허할 정도로 넘쳐 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리 저리로 증식하고 번져가지만, 그 각각의 이야기들에 일목요연한 질서를 부여할 연결고리도 인과 관계도 없다. 데리다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파레르곤(parergon)이 에르곤(ergon)을 장악해 버린 형국이라고나 할까. 재채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성희의 소설은 산만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짧고 빠르게 진행되는 문장의 속도감, 그리고 그 문장이 한두개 씩만 모여도 금세 제 모습을 갖추고 빙그레 미소짓게 하는 유머의 따뜻함은 윤성희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누리게 되는 축복이다. 별자리 그리기를 포기한 천문학자의 눈에 비친 은하수의 아름다움이 이와 같을까? 굵직굵직한 별 몇 개를 추려 그 사이에 선 그리기를 포기하는 순간, 작거나 여리거나 깜박이거나 더러는 궤도를 벗어나 추락하는 별까지도 눈에 들어오는 이치. 윤성희의 소설을 읽는 재미가 그와 같다.
그 아름다운 은하 속에는 최근의 소설에서 좀체 볼 수 없는 과소인간들 간의 연대, 가난하고 비참하고 고립된 단독자들이 서로를 부르고 만나고 이해해가는 모습도 담겨 있다. 당분간 윤성희의 소설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소설일 것임에 틀림없다.
문학평론가 김형중
사진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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