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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리에 모인 10명의 달인 '드로잉 에너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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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리에 모인 10명의 달인 '드로잉 에너지'전

입력
2006.11.0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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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의 아르코미술관에서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드로잉 에너지> 라는 이름으로 3일 개막한 이 전시는 드로잉의 달인이라고 할 만한 중진작가 10명의 단체전인데, 전시 내용이 좀 색다르다.

우선 드로잉의 전통적 개념에서 탈출했다. 흔히 드로잉 하면 떠올리는 소묘나 스케치 같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장르가 뭐든 간에 드로잉의 본질 즉 다분히 즉흥적이고 직관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작가들은 종이나 벽면 드로잉 뿐 아니라 설치, 영상, 조각 등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드로잉적인 자유를 실천하고 있다.

다루고 있는 주제 또한 거창하거나 어렵지 않다. 대부분 일상에서 건진 극히 개인적이고 모호하고 사소한 이야기들을 수다 떨 듯 펼치고 있다. 공중에 매달린 길이 54m의 거대한 소용돌이 판에 온갖 잡화성 드로잉을 채운 김을의 설치작품 <와(渦)> 가 대표적이다. 돌돌 말린 벽면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와야 하는 이 작품은 시작도 끝도 없는 수많은 이야기 혹은 심각한 질문을 폼 잡지 않고 던진다.

드로잉의 개념을 확장하다 보니 ‘어, 이게 왜 드로잉이야’ 싶은 작품도 있다. 함연주는 자신의 머리카락 한올한올로 그물망을 짜서 천정에 매달았다. 송진을 발라서 이슬 맺힌 거미줄 샹들리에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약한 조명을 받아 벽에 섬세한 그림자를 그려낸다. 다세대 주택 옥상에 텃밭을 가꾸는 배종헌은 직접 만든 농기구와 텃밭 일지, 농작물 성장 과정 드로잉, 주택 옥상 모양의 시멘트 구조물, 영상 등으로 <천상의 농부> 라는 작품을 제작했다. 김태헌은 16절지 크기의 캔버스 드로잉을 책장 가득 꽂아서 뽑아보게 했고, 누구든 편안히 앉아서 쉬라고 의자와 책상도 직접 만들어서 갖다 놓았다. 황혜선의 드로잉은 하얀 실리콘으로 흰 벽에 그려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전화기, 그릇, 가방 등 일상 기물을 최소한의 선으로 거대하게 윤곽만 표현함으로써 익숙한 것들이 낯설게 다가온다. 물방울 모양으로 뚫린 문으로 들어가 안쪽 벽 꼭대기를 보면 실리콘 드로잉의 수도꼭지가 있는 것도 재미있다. 이밖에 이기칠, 이미혜, 이순주, 임동식, 임자혁 등 다른 작가들도 유머, 솔직함, 생뚱맞음, 진지함, 예민함, 성실함 등을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형미 큐레이터는 “드로잉은 특정 장르나 조형어법이기 이전에 정신적 태도이자 방법론”이라며 “어디에도 멈추지 않고 언제나 새롭게 출발하는, 무한한 생성의 에너지가 드로잉의 본질”이라고 설명한다. 왜 지금 드로잉을 다뤄야 할까. 그의 분석은 이렇다. “현대미술은 온갖 시도를 해봤지만, 우리는 거대한 담론과 난해한 개념 작업에 피로를 느끼고 있다. 드로잉에 주목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되돌아가려는 게 아닐까?”

전시는 12월 14일까지. (02)7604-598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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