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 제치고 나이지리아에 KTX를 놓아라"
“포스코 건설이 철도사업도 합니까?”
“예, 합니다.”
“그럼 우리 철도 재건 프로젝트도 검토해 보세요.”
지난해 7월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의 대통령 관저. 포스코 건설의 한수양 사장은 올루세군 오바산조 대통령의 갑작스런 제의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날 대통령 면담은 나이지리아측이 석유광구 개발권을 주는 대가로 석유공사, 한전, 포스코가 발전소와 가스파이프라인을 지어주는 양국 정부간 양해각서(MOU)가 체결된 직후 이뤄졌다.
한국측 3개 회사 사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오바산조 대통령이 포스코 건설을 지목하며 이같이 말하자, 한 사장은 흥분을 누를 수 없었다. 나이지리아 철도 재건 프로젝트는 총 4단계에 걸쳐 25년간 350억 달러가 투자되는 초대형 공사였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국내 건설사상 최대 규모인 100억 달러 수주를 위한 비밀작업이 시작됐다. 포스코건설은 지난해 9월부터 두 차례의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결론은 나이지리아에 철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나이지리아 정부는 영국 식민지시절 건설된 뒤 유지ㆍ보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실상 흔적만 남아 있는 전국의 3,500㎞ 구간의 철도를 25년에 걸쳐 정상화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지만, 실상 정상화할 만한 게 없었다. 가령 라고스역의 경우 철도가 인근 지역으로 시간당 25㎞의 속도로 하루 한번 운행할 뿐이었고, 철도 역사와 철로 주변에 빈민들이 들어와 집을 짓고 살 정도였다.
포스코건설은 보고서를 통해 “식민지 시절 만들어진 협궤철도를 개ㆍ보수를 하지 말고 표준궤도를 새로 깔아야 한다. 지역균등만을 고려해 철도를 길게 놓을 것이 아니라 한국의 경부선처럼 중심 간선축을 우선 완성해야 경제성이 뛰어나다”는 요지의 의견을 제출했다. 이에 나이지리아측은 무릎을 쳤고, 교통부 장관 일행이 한국을 직접 찾아 경부고속철도(KTX)까지 시승했다. 시속 300㎞ 가까이 올라가는 속도에 나이지리아측 일행은 경악했고, 이 때의 시승경험은 100억 달러 수주의 밑거름이 됐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사업은 지난 4월 암초를 만났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이 나이지리아를 방문, 10억 달러의 철도차관을 포함해 30억 달러 상당의 차관을 3%의 싼 이자율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한 것. 나이지리아측은 “한국의 철도기술은 중국보다 15년 앞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돈이 필요하다. 한국도 중국처럼 연리 3%내로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나이지리아 최대 도시인 라고스에서 행정수도 아부자를 거쳐 북부도시 카노로 이어지는 1,315㎞ 구간(83억 달러상당) 철도 건설공사는 지난달 중국의 토목공사그룹(CCECC)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남은 것은 유전도시 포트 하코트에서 아부자를 거쳐 북부도시 마이두구리로 이어지는 1,500㎞의 동부 간선축(100억 달러 규모). 포스코건설이 이 마저 놓치지 않으려면 중국의 차관과 비견될 수 있는 자금동원 프로그램을 내놓아야 했다.
포스코건설은 고민 끝에 생산 유전과 철도를 연계시키는 전략을 짰다. 나이지리아측이 생산유전 광구를 할인된 가격으로 내주면, 국내 은행들은 이를 담보로 10억 달러의 상업차관을 제공하면서 광구유전의 일정지분을 받게 되고, 포스코건설은 철도건설을, 석유공사는 유전생산을 각각 맡는 방식이다. 8월엔 이원걸 산자부 차관이 경협사절단을 이끌고 직접 나이지리아를 방문, 석유성 장관 등을 만나면서 대대적인 지원사격을 폈다.
그러나 또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유전의 성격을 놓고 양측간 줄다리기가 이어진 것. 나이지리아측은 ‘매장량이 증명된’ 광구를 주겠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측은 생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광구는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있는 만큼, 이미 석유가 쏟아지고 있는 ‘생산’ 광구를 강력히 요구했다. 결국 오바산조 대통령이 6일 방한한 자리에서 생산광구 하나를 내주기로 최종 결론이 났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얼마나 빨리 국내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모아 사업에 착수하느냐가 관건이다. 철도 인프라 건설을 중국측에 선점 당한 까닭에, 중국이 먼저 철도구간을 건설할 경우 신호시스템과 차량 스펙을 중국식에 맞춰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건설 나이지리아 법인의 소기석 법인장은 “나이지리아 철도망에 한국의 기술표준이 적용되도록 자금조달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포스코건설은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 중국과 포스코가 이미 수주한 183억을 제외하고도, 2~4단계로 추진될 167억 달러 상당의 나머지 구간도 추가 수주할 가능성이 있는데다, 나이지리아를 교두보로 인근 베넹이나 가봉, 앙골라에도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스코 건설의 최종목표는 더 큰 곳에 있다. 나이지리아에 고속철도를 놓는 것이다. 협상?위기에 빠질 때마다 “중국에 불리트트레인(Bullet Trainㆍ총알열차)이 있는가. 한국과 협력해야 철도산업을 한 차원 업그레이들 할 수 있다”고 말하면, 뻣뻣한 나이지리아측도 “좋다. 이 프로젝트를 원만히 성사시킨 뒤 BT도 놓아달라. 한국의 서울과 부산을 잇는 KTX처럼 우리도 항구도시 라고스에서 수도 아부자까지 달리는 고속열차를 갖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포스코건설의 새 역사가 아프리카에서 쓰여지기 시작했다.
아부자(나이지리아)=박진용기자 hub@hk.co.kr
■ 현금이 王
지난 4월 포스코건설 아부자 사무소에 부임한 최경환(43) 본부장은 기아자동차의 카니발을 사기 위해 경호원을 대동한 채 현금이 가득 담긴 비닐 백 두개를 양손에 들고 은행에 갔다.
당장 차가 필요했지만, 은행간 계좌 이체를 하려면 3일에서 1주일이나 소요된다는 말을 듣고 직접 거래 은행에서 돈을 찾아 차 딜러가 지정한 은행 계좌에 입금시키기 위해서 였다.
비닐 백에는 카니발의 현지 판매 가격인 450만 나이라(한화 3.500만원)가 들어 있었다. 돈다발을 창구에 올려 놓자 여직원은 2시간30분에 걸쳐 쉬지 않고 센 뒤 미소를 지으며 “OK”라고 말했다.
이 같은 웃지 못할 일은 나이지리아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럽다. 모든 거래가 현금으로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나, 식당에서 계산을 할 경우에도 한 뭉치씩 현금거래가 오간다. 특급 호텔 1~2곳을 제외하고는 신용카드도 받지 않는다. 또 신용카드를 사용했다가는 번호가 유출돼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게 현지 주재원들의 전언이다. 호텔에 숙박할 때는 호텔비에 상당하는 금액을 사전에 적립해야 한다.
석유공사 라고스 사무소의 이진석 사장은 “가장 큰 지폐가 1,000나이라(한화 8,000원)이고 대부분 100이나 200 나이라 짜리가 많이 쓰여 밥을 먹고 계산을 할 때도 돈을 한 뭉치씩 가지고 다니게 된다”며 “늘 지갑이 두둑하다”고 웃었다.
박진용기자
■ 천연가스도 풍부
나이지리아는 석유 뿐만 아니라 천연가스도 많이 난다. 천연가스 매장량은 세계 9위((124조 입방피트)를 자랑한다. 그런데 최근까지 가스를 수집ㆍ액화시키는 기술이 발달돼 있지 않아 생산량의 75% 가량을 태워 버렸다. 엄청난 공해요인으로 작용한 것. 더욱이 세계적으로 가스 수요가 증가하자, 나이지리아 정부는 2008년까지 전량 수집해 국내 주요시설에 공급하거나 이를 액화시켜 수출키로 했다. 이에 따라 대대적인 가스파이프라인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석유공사가 심해유전을 확보하는 대가로 한국전력 및 포스코건설이 지어주기로 한 가스관건설도 그 중의 하나. 이 프로젝트는 유전지대인 와리 인근에서 수도 아부자를 거쳐 중북부 카두나로 이어지는 1,200㎞구간이다. 한전과 포스코는 내년 초까지 타당성 검사를 마친 뒤 건설에 들어갈 예정이다.
나이지리아 정부 주도로 베넹과 토고를 거쳐 가봉까지 이어지는 약 700㎞의 ‘서아프리카 가스파이프라인’ 프로젝트(6억 달러 규모)는 이미 올해 첫 삽을 떴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트랜스사하라 가스파이프라인 프로젝트(TSGP)다. 나이지리아의 천연가스를 사하라 사막을 가로 질러 유럽으로 수출하기 위해 2012년에 착공, 2015년까지 70억 달러를 투자해 니제르와 알제리로 가스관을 연결하는 초대형 공사다.
토니 추쿠에케 석유성 국장은 “한국 기업들이 맡은 가스파이프라인 공사는 나이지리아 서부해상의 가스를 내륙으로 끌어 들이는 중요한 사업”이라며 “이를 TSGP프로젝트와 연결시킬 계획이며, 한국기업들의 TSGP 참여도 적극 환영한다”고 말했다.
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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