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달았던 이름표를 그냥 가슴에 단 채 지하철이나 버스를 오가는 학생들을 본다. 그 가운데는 한글세대에게는 딱하기 그지없는 이름을 가진 학생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임 신중'같은 이름이다.
한자로야 좋은 뜻이겠지만 남학생이 한글로 된 '임 신중'이라는 이름표를 가슴에 붙이고 지하철에 서 있는 것을 보자면, 차마 웃을 수도 없고, 표정관리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 일본의 '악마 소동'과 권리 亂用
10여 년 전, 일본에서 한 부모가 아이를 낳아 출생신고를 하면서 자식의 이름을 '악마(惡魔)'라고 지은 적이 있었다. 아이의 이름이 악마라니.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그 아이의 이름은 '김 악마'이거나 '추 악마'가 되어야 할 운명이었다.
이 일은 '악마소동'으로 불리면서 부모의 의무와 권리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과연 자식의 이름을 짓는 명명권(命名權)이 부모의 귄리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의무인가. 아이의 이름을 악마라는 '저주받은' 이름으로 지어줄 수도 있다는 부모의 권리와 '사람답게' 지어 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가 아닌가 하는 논란이었다.
자녀에게 자신의 뜻대로 이름을 지어주는 행위는 친권(親權)의 하나다. 그러나 이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 일본 민법은 '친권을 행사하는 자에게는 자녀를 감호 및 교육할 권리와 함께 의무가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악마 소동'은 결국 도쿄 가정법원이 악마라고 하는 이름은 명명권의 난용(亂用)에 해당되며 이는 호적법에 위반됨으로 허가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옛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사회를, 국가를 이렇게 만들어 가도 되는 것인가 하는 허탈함과 함께 악마라고 자식의 이름을 붙이려 한 친권의 난용을 떠올리는 것이다.
혁신도시다 뭐다 하면서 전국의 땅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고, 강남의 아파트가 집값 상승의 주범이라면서 세금 공세를 펴더니 아파트값을 잡기는커녕 집중호우 같은 세금을 맞게 된 입장에서 이것 또한 정책담당자들의 의무를 망각한 권리의 난용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과연 이럴 수 있는 귄리가 정부에 있다는 것인가 묻고 싶다.
한 장관이 기자들을 찾아와 신도시 예정지를 흘리자마자, 검단지구 주변의 한 아파트에는 밤샘 줄서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해서 33평에 당첨된 사람은 프리미엄만 하루아침에 4,000만원을 챙기는 세상을 만들어냈다.
투기 대책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신도시 계획을 흘리는 거야말로 투기 조장 이외에 그 무엇도 아니다. 내 자식이니 내 마음대로 이름 짓겠다면서 '악마'라고 출생신고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정부가 도대체 무슨 대책을 갖고 이런 발표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국민은 아우성인데도,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는 일도 없으니 그는 국회에 나와서 실실 웃고나 있다.
● 부동산정책 난용은 누가 책임 지나
요즈음 부동산시장 불안을 잠재운답시고 정부쪽에서 흘러나오는 정책이라는 것을 보고 있자면 말 그대로 점입가경이다. 다세대, 다가구의 규제를 완화하겠다면서 '주차장 의무비율 완화를 통해 다세대, 다가구 공급을 늘리겠다'니 이게 제 정신에서 나오는 소리인가.
소방차가 들어가기에는 이미 불가능해져 버린 주택가 골목길이 그들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가. 주차난만 심화되고 주차장이 들어설 공간에 반지하주택이나 들어설 게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일본의 어느 정신 나간 부모가 지어주려던 악마라는 이름에는 명명권의 난용이라는 판결이라도 있었다지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나. 말이 떨어지자마자 팔리지 않던 집값도 다락같이 뛰어버리게 한 그 사람. 그래놓고도 그 입으로 '집값이 곧 내릴 테니 지금 집 사지 마세요'라고 했다니, 우리의 모습이 가련하기까지 한 어제 오늘이다.
한수산 세종대 교수ㆍ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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