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혜영 '사육장 쪽으로'/ "타자에 의한 삶… 도시는 사육장"
“천성적으로 착하고 교훈적인 얘기엔 흥미가 없어요. 이질적이고 충격적인 이미지를 좋아하다 보니 그로테스크하고 엽기적인 상상력이 발달한 것 같아요.”
작품과 작가의 실제 이미지가 상충하는 게 드문 일은 아니지만 <사육장 쪽으로> 의 편혜영(33)씨는 그 충돌이 유별나다. 얌전하고 부끄럼 많은 성격을 보면 ‘천상 여자’이지만, 그의 작품은 엽기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을 통해 독자의 청각과 후각에 극한의 공포를 불어넣는다. “제 소설을 보고 집에 혼자 있을 때 뭐하고 지내는지 궁금하다는 분들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쥐 배 가르며 놀아요’라고 농담했어요.(웃음) 제 작품이 저의 인상과 괴리되는 데서 오는 충격효과가 컸던 것 같아요.” 사육장>
<사육장 쪽으로> 는 평화로운 전원주택 마을의 중산층 소시민이 파산 경고장과 마을 사육장 개들의 습격을 동시에 받게 된, 강렬한 위기의 하루를 그린 단편. “처음부터 중산층의 속물성과 깨지기 쉬운 허구를 드러내자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고, 이미지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제가 생겼어요. 사육되는 개들은 사육장 안에서만 생활하고 삶과 죽음의 방식이 타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도시인과 비슷하기도 하잖아요.” 사육장>
편씨는 “전에는 문제를 선명하게 하기 위해 극단으로 이미지를 밀고 나갔는데, 이젠 그런 이미지들에 손이 안 간다”며 요즘의 변화에 대해 말했다. “워낙 강력한 감각이라 중복되면 효과가 체감되게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주인공의 아기가 개한테 물리는 장면도 묘사를 참았는데, 많은 분들이 여전히 잔인하게 느끼시더라구요. 아, 나는 태생이 끔찍해서 이런 걸 너무 천연덕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 자책했어요.”
2000년 등단해 그 이듬해부터 직장생활과 소설쓰기를 병행하고 있는 편씨는 “사무원의 쓸쓸함에 관한 소설은 열 편이라도 쓸 수 있다”며 웃었다. “사실 소설이라는 게 노동으로선 참 형편없는 일이거든요. 하지만 소설을 쓰는 그 시간만큼은 내가 유일하게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매혹적이에요. 사회적 인간으로 살다 보면 남들 눈에 보이는 내가 진짜 나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많은데, 소설을 쓸 때만은 그런 고민이 없으니까요.”
◆ 심사평
삶의 부조리 감각적 형상화 탁월
<사육장 쪽으로> 는 우리 소설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야생의 상상력이 그로테스크하게 빛나는 작품이다. 도시 인근의 전원주택단지를 지배하고 있는 삶의 부조리를 이 소설만큼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소설도 드물 것이다. 어디에 있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는 사육장의 개 짖는 소리로 청각화한 이 야만적인 공포는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소시민의 삶을 위협하는 삶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놀라운 메타포라고 할 만하다. 사육장>
편혜영이 이런 종류의 알레고리에 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상적 삶을 특유의 판타지로 추상화하는 알레고리 작가로서의 편혜영의 독특한 위상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첫 소설집 <아오이 가든> 은 역겹고 끔찍하며 엽기적인 상상력의 창고와도 같았다. 아오이>
그러나 <사육장 쪽으로> 에 이르게 되면 이 작가가 그 기괴한 악몽 아래 하나의 현실적인 밑그림을 살짝 배치해 둠으로써 독자들에게 해몽의 실마리를 제공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현실과 판타지가 절묘하게 섞여있다고 할까. 파산 직전에 이른 가장이 치매에 걸린 노모와 개에게 물어뜯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아 헤매는 이 소설의 마지막은 우리의 현실이 이 끔찍한 악몽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지 묻고 있는 듯하다.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상상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육장>
문학평론가 신수정
■ 정미경 '내 아들의 연인'/ "자본에 밀려난 인각 비극 그리려"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결핍을 다루고 싶었어요. 과도한 자본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뭘 잃어가는가를 그리고 싶었던 건데, 작품 속 주인공과 저를 일치시키는 분들이 많더군요. 문단에 나오니 상류층이 다 되네요."(웃음)
정미경(46)씨의 단편 <내 아들의 연인> 은 강남의 유한부인이 극빈한 여자를 사랑하는 아들로 인해 겪는 심리적 갈등을 치밀하게 그린 작품이다. "소설 속 '나'의 갈등은 중산층 이상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겁니다. 대부분 자신은 속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지만, 과연 그런지 묻고 싶었어요." 내>
주인공이 영문학을 전공한 40대 중년부인이라는 점 등 몇 가지 유사점이 자연스럽게 작가를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은 몇몇 평자들로부터 '가진 자가 바라본 가진 자의 세계'라는 평가를 받았다. "6년쯤 작업하다 보니 오독(誤讀)이란 독자의 고유하고도 즐거운 권리구나 하고 느낍니다. 자본이 주인공이 되면서 자기 삶이 주변으로 밀려나는 쓸쓸하고 비극적인 면을 느꼈으면 했는데, 부유층 삶에 대한 묘사만 눈여겨보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해요."
1987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가정주부로만 살아오다 2001년 계간지를 통해 다시 등단한 정씨는 치밀한 묘사와 풍부한 디테일로 정평이 났다. "계급이나 직업을 묘사할 때 입체감을 주기 위해 디테일 리서치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글에 빈틈이 너무 없어서 숨막힌다는 분들도 있는데, 글쎄요, 뒤늦게 소설을 시작하면서 군기가 강하게 잡혀서 그런지 어떤 때는 단편 하나를 몇 달씩 주물러요."
<내 아들의 연인> 은 가난한 연인과 헤어졌다는 아들의 말에 주인공이 묘한 안도감과 공허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끝난다. "이제 가난은 돈의 문제만이 아니에요. 돈 외에도 다양한 자본과 권력들이 있고, 부(富)라는 것도 부정한 부와 성실한 부 등 스펙트럼이 다양합니다. 삶이 훨씬 복잡해진 만큼 빈부의 문제를 분석할 수 있는 시각도 다양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내>
지난 6년간 친구들과의 교유조차 끊으며 소설쓰기에 매달려왔다는 정씨는 지금에서야 늦게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아휴, 이거 젊어서부터 했으면 지금쯤 골병 들었을 거예요."
◆ 심사평
상류층 묘사 소설사적 공백 메워
정미경의 소설은 전형적인 부르주아 소설이다. 소설이란 장르가 원래 부르주아 계급의 출범과 그 기원을 같이 한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간 한국 소설은 소위 최상류층 유한계급의 일상을 다룬 적이 별로 없다. 우리 소설은 계급 문제에 관한 한 항상 도덕적이었다. 그런 이유로 유한계급의 삶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우리 문학사에서는 소설적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내 아들의 연인> 이 문제적인 첫 번째 이유가 그것이다. 내>
물론 정미경의 소설이 비도덕적이란 이야기가 아니다. <내 아들의 연인> 은 유한계급에 속하는 중년 부인을 화자로 등장시켜 계급 간 단절의 강고함을 다룬다. 계급은 경제의 산물일뿐만 아니라 부르디외 식으로 표현해 문화적 '구별짓기'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사실, 그리고 계급간 갈등이란 강자가 약자에 대해 베푸는 온정이나 약자가 강자에 대해 행사하는 투쟁만으로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란 사실을 세심하게 보여준다. 19세기 영국 소설들의 예에 육박하는 섬세한 세부묘사와 심리묘사가 가히 압권이거니와, 손쉬운 온정주의와 도식적인 화해를 거부한 작가적 치열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내>
문학평론가 김형중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사진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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