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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가상 인터뷰-대화] <35>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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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가상 인터뷰-대화] <35>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

입력
2006.11.0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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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여신(Lady Justice).

로마 신화에서의 이름은 유스티치아(Justitia)이고 이로부터 정의(justice)란 말이 생겨났다. 조각이나 그림에서 유스티치아는 전통적으로 흔히 가슴을 드러내고 안대를 하고 있으며 오른 손에 양날의 칼을, 왼손에는 천칭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유스티치아가 볼 수 없다는 것은 정의와 불의를 판정하는 데 있어 사사로움을 떠나 맹목적일 정도로 공평함을 유지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천칭은 영혼의 무게 또는 죄의 값을 재는 도구 내지는 기준을 상징하며, 칼은 판정의 결과에 따라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 권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정원장·보수언론이 '낙인'찍어 X파일 공개 반대 때와는 정반대 '전향 386' 독재정권 답습 아이러니"

근대에 와서 유스티치아의 아이콘은 정의와 관련된 그리스의 여신들 및 안대를 한 로마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를 합성해 놓은 형태로 법정 안팎을 장식해 왔다. 그리스 신화에서 정의의 여신으로 설정된 신격에는 아스트라이아(Astraea)와 디케(Dike)가 있다.

아스트라이아는 제우스와 테미스의 딸로서 황금의 시대부터 철의 시대 최후까지 인간의 곁에 남아 있던 여신으로, 하늘에 올라가서는 처녀좌가 됐고 그녀가 갖고 다니던 정의의 저울은 천칭좌가 됐다. 처녀좌 다음에 혹은 가까이에 천칭좌가 오거나 놓여있는 것, 그리고 밤과 낮을 정확히 반으로 가르는 추분점이 2,000년 전에는 천칭좌의 자리 혹은 시기에 끼여 있다는 것도 다 이러한 신화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디케 역시 제우스와 테미스의 딸이며 계절의 여신인 호라이(Horae) 세 자매 중의 하나로 설정돼 있다. 제우스가 디케에게 땅에서 인간을 공평하게 만드는 역할을 맡겨서, 어머니인 테미스가 신들의 정의를 주관할 때 디케는 인간의 정의를 주관했다. 하지만 제우스는 곧바로 이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디케로 하여금 올림푸스 산 자신의 옆자리로 옮겨오게 했다는 것이다.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는 세 가지 상징물, 즉 번영을 상징하는 풍요의 뿔피리,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방향타, 그리고 운명의 부침과 영고성쇠를 상징하는 수레바퀴로 표상되기도 했다. 포르투나는 요행과 우연과 불확실성의 화신으로서, 마키아벨리의 경우 <군주론> 에서 남성적이고 정치지도자적인 덕 내지는 전사적 자질을 뜻하는 비르투와 지속적으로 대조시켜 논의했다.

유스티치아 조각의 뒷면에는 흔히 “fiat justitia, ruat coelum”이라는 글귀가 새겨지곤 하는데, 이 말 뜻은 “설령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정의가 구현되게끔 하라”이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율리우스 시저의 장인이었던 피소(Piso)가 한 말이라고 한다.

한편, 오늘날 실증적 연구에 의하면, 로마 시대 티베리우스 집정기에 발행된 동전 초상에서 유스티치아는 안대를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즉 그 당시에는 정의의 여신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증거에 바탕을 둔 판단능력을 부여받고 있었다는 해석이다.

그러다가 15세기 말에 이르러 정의의 여신에게 안대가 씌어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한편으로 정의가 사물을 바로잡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함축하며, 다른 한편으로 근대에 이르러 정의가 실증적, 추상적 법으로 축소된 것에 상응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고대 중국의 경우, 천칭의 저울대를 가리키는 말은 형(衡)이었으며, 천칭의 저울추를 권(權)이라고 불렀다.

균형(均衡), 평형(平衡), 형평(衡平)이라는 말은 천칭을 사용하여 양쪽의 무게를 서로 똑같게 한다는 취지에서 생겨났고, 형량(衡量)이라는 말은 천칭을 이용하여 양쪽을 비교해가면서 무게를 잰다는 뜻을 갖고 있다. 반면, 저울추는 균형점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어서 권(權)은 나중에 권세(權勢)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재현(이하 현) 유스티치아님 어서 오세요.

유스티치아 얼마 전 한국에서는 내가 눈뜨고 있다는 게 문제가 됐다지요? 어떤 게 좋아요? 내가 눈 뜨고 있는 것와 감고 있는 것 중에서요.

현 유스티치아님이 눈을 뜨고 있으면 ‘넘’ 무섭고, 눈을 감고 있으면 저의 억울한 사정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겠지요. 그러니, 한 눈은 감고 한 눈은 떠 주세요.

유스티치아 그거야말로 전관예우받는 변호사같은 느낌이 나지 않을까요…, 내 역할은 변호사가 아니라 재판관인데요.

현 그래도, 만약 제가 형사 피의자라고 한다면 무엇보다 ‘무죄 추정’(presumption of innocence)의 권리가 중요하니까, 유스티치아님이 재판관석에 앉아서 제게 윙크를 해주셨으면 해요. 무죄 추정의 원칙을 라틴어로 ‘in dubio pro reo’라고 하잖아요? 모든 절차와 증거 등을 ‘피의자의 편에 유리하도록 의심’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유스티치아 법정에서 최종적으로 유죄가 판결け?전까지는 누구든지 무죄로 간주된다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야말로 형사 절차에서 근대와 전근대를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 중의 하나이지요. 근대 이전에는 무조건 유죄로 추정해서 영장 없이 잡아다가 일단 고문부터 하고는 했으니까요. 지금이야 유죄 입증의 부담이 검사에게 있는 것이지만 옛날에는 죄가 없다는 것을 밝힐 부담이 일방적으로 피의자에게 있었지요. 그런데 왜 갑자기 무죄 추정의 원칙이 한국에서…?

현 네. 최근에 국정원장이란 분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특정 보수언론에다가 미리 시시콜콜 자기의 의견을 밝히면서 법원의 최종 판단 없이 제멋대로 피의자들을 ‘간첩단’으로 규정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피의자 쪽에서는 피의사실 공표 등의 혐의로 그 분을 고소했지요.

유스티치아 국정원이라는 데는 뭐 하는 데인가요?

현 흔히들 음지에서 일하면서 양지를 지향한다고 말하던 곳인데요, 그런 만큼 과거에는 소위 간첩단 사건의 경우 수사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보를 사전에 결코 공개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모두들 경악하게 됐습니다.

유스티치아 아항, 무죄 추정의 원칙을 깨뜨린 것이로군요. 국정원장이라는 분이 법을 잘 모르시는 분이신가요?

현 그렇지는 않습니다.

유스티치아 간첩이라는 게 뭐지요?

현 최근 한국에서는 장관을 부르는 별칭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야당 의원이 통일부장관을 ‘세작’이라고 불렀는데, 세작이란 간첩의 옛말이지요.

유스티치아 아항, 그러니까 웃자고 할 때 쓰는 말인가 보군요.

현 정반대입니다. 지금 상황이 심각합니다. 보수 언론도 무죄 추정의 원칙에 아랑곳 하지 않고 피의자들을 간첩단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유스티치아 보수 언론은 근대 형법의 정신에 무지한 거로군요.

현 아닙니다. 지난번 X파일 사건의 경우, 엄청난 불법 사실이 X파일에 담겨 있었지만, 그 X파일이 적법하게 얻어진 게 아니라는 핑계로 공개되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았지요. 통신의 비밀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또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배제해야 한다거나 하면서 마구 떠들었어요. ‘그랬던’(!) 보수 언론이 이제는 이번에는 신문 한 면 전체를 도배하면서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짓밟고 나섰답니다.

유스티치아 아항, 나도 그 기사는 인터넷으로 보았어요. ‘전향한 운동권 386이 본 일심회’라는 제목의 기사였지요, 아마. 그 기사 보도에 의하면, ‘전향 386’ 중에 한 명이 “증거를 없애 처벌은 면했지만 나 자신이 간첩이었다”고 고백했다던데, 왜 한국의 국정원에서는 간첩을 자인하는 사람은 그냥 놔두고, 간첩이 아니라는 사람들을 간첩단으로 몰아가는 건가요?

현 ‘전향 386’으로서는 필사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정치적 상황에 놓여 있으니까, 굳이 좋게 보자면 그 자백은 임의성이 없는 거라서 그랬나 봅니다.

유스티치아 아항, 그 경우는 ‘자기 부죄(自己負罪ㆍself-incrimination) 금지 특권’(자신에게 형사상 불리한 진술은 하지 않을 권리)을 포기해가면서 간첩임을 자백할 정도이니까 정치적, 심리적으로 엄청난 내적 강제 아래에서 그 자백이 이루어진 거네요. 그 동안 저는 한국 사회가 정치적으로나 사법적으로 볼 때 동아시아에서 가장 민주화가 잘 이루어진 나라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갑자기 ‘개판’이 된 거죠?

현 보수 언론에 대해서는 따로 보탤 말이 없고요. 가장 큰 문제는 ‘전향 386’에게 있습니다. ‘전향 386’의 주장은, 설령 증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체험에 의거해 볼 때 소위 일심회 관련 피의자들은 “간첩단이 맞다”는 것이고, 또 묵비권의 행사는 ‘좌익운동 투쟁수칙’을 따르는 거랍니다. 과거에 독재정권이 전향하기 전의 그 386들을 불법 연행해서 고문할 때 사용했던 어거지 논법을 이제 그들 스스로가 사용하고 있는 거지요.

유스티치아 아, 그렇군요. 절차적 민주주의를 사법적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든가 적법 절차의 원칙, 불법 수집 증거 배제의 원칙, 자기부죄 금지의 원칙 등이 가장 기본적인 것인데, 지금 ‘전향 386’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유린하고 있는 거네요. 오늘날 한국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바로 그 ‘전향 386’을 포함한 386세대 전체, 그리고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많은 국민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민들 모두가 정말 화를 낼 만도 하겠네요.

현 ‘전향 386’은 단순한 전향을 넘어서 자신이 속했던 세대가 성취해 낸 위대한 역사적 과업을 깡그리 부인하고 있는 겁니다. 내년은 단지 대통령 선거의 해가 아니라 무엇보다 6월 항쟁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민주주의를 유린하면서 단지 집권에만 ‘올인’하려는 집단은 말 그대로 ‘공공의 적’이자 ‘역사의 배신자’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문화비평가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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