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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자 인터뷰] (1) 강영숙·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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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자 인터뷰] (1) 강영숙·이기호

입력
2006.11.0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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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지향? 결국 허무의 영토 아닐까요"

한국문학의 현주소를 정확히 짚어내는 높은 안목과 공정한 심사로 한국 문단에 활력을 불어넣어온 한국일보문학상의 2006년도 후보작 10편이 결정됐다. 후보자 10명의 인터뷰와 후보작에 대한 예심 위원들의 심사평을 5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

■ 강영숙 '리나'

“허무의 영토를 그리고 싶었어요. 결국 문학이 지향하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 모든 이데올로기나 가치 같은 걸 다 지우고 난 후에 남은 허무의 영토 같은 것 아닐까요.”

한국일보문학상의 단골후보 강영숙(40)씨의 첫 장편소설 <리나> 는 열 여섯 탈북 소녀 리나의 국경 넘기를 그린 작품이다. 유목민처럼 떠도는 리나가 8년에 걸쳐 중국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매춘, 인신매매, 노동착취 등의 간난신고가 정주와 탈주의 욕망을 넘나들며 급류처럼 몰아친다.

“국경은 첨예한 이해관계가 모인 곳입니다. 어찌 보면 평범한 경계일 뿐인데, 어떤 사람들은 그곳을 넘기 위해 생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피 튀기는 국경을 그저 청바지를 사 입고, 대학에 가고 싶기 때문에 넘어야 하는, 보편적 삶을 추구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보편적인 공간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소설 속에 지명과 국명을 명기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리나> 의 문장은 까끌까끌하다. “문장이라는 게 결국은 소설의 형식을 지배하게 되는데, 정조에 빠져있으면 이런 얘기가 환기시킬 수 있는 게 뻔하잖아요. 버석거리는 모래 같은 느낌으로, 좀 모던한 스타일로 가고 싶어 일부러 까끌까끌하게 썼어요.”

소설에서 리나는 가족을 잃고 외국소년 ‘삐’, 봉제공장 언니, 늙은 여가수, 할머니 등과 또 다른 가족을 꾸린다. “전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이데올로기가 가족주의라고 생각해요.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지만, 모든 것에 앞서가는 그 단일한 이데올로기가 참 싫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작품에서는 유사가족 형태를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어린 소녀지만 때론 할머니 같기도 한 리나. 리나는 노동자면서 창녀이기도 하고, 이성애자면서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리나 캐릭터에 다성성을 주고 싶었어요. 8년간의 이야기지만, 그 안에 여자의 전 생애를 다 담고 싶었습니다. 그게 그런 소수자들에 대한 제 나름의 애정이기도 하구요.”

문학은 동시대의 삶에 작품으로 개입하는 것이라는 그는 한가한 얘기를 쓰는 건 아주 질색이라고 했다. 작가가 끊임없이 혼자 묻고 반응해야 하는 아주 피곤한 직업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펜대를 놓지 못하는 것은 그 개입의 보람과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탈북자 타자성 다룬 문제작

■ 심사평 <리나> 의 가장 큰 장점은 다루고 있는 소재다. 지난 시대와 달리 성적 소수자, 탈북자, 조선족, 이주 노동자 등 다양한 타자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 21세기 초엽의 한국 사회이다. 좋은 문학이란 항상 당대 사회의 가장 예민한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할 때 탈북자 문제를 장편의 분량에 담은 <리나> 는 그 시도부터 우선 문제적이다.

<리나> 의 두 번째 장점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가족 모델의 진보성이다. 주인공 리나와 그의 동료들이 만들어가는 국적도, 성적 취향도, 나이도, 성별도 초월한 가족, 일종의 타자들의 연대라 할 만한 대안적 가족 모델은 그간 한국 소설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급진적이다. 아울러 강영숙 특유의 문체 또한 거론할 만하다. 아주 건조함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이미지들의 숨 막힐 듯한 전시장이라 할 만한 강영숙의 문체는 독자에게는 다소 불편할 정도로 낯설다. 강영숙의 문체는 그것을 지칭할 만한 적절한 명명법을 아직 찾기 힘들만큼 새롭다. 그러나 그 새로움은 한국의 소설 문체가 진화하고 있다는 표지로 읽히지 미숙함의 지표로는 전혀 읽히지 않는다.

문학평론가 김형중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 이기호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우연에 대처하는 자세가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 같아요. 저는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서 힘겹게 그 우연들을 넘어왔는데, 그렇게 남들 10분에 갈 거리를 1시간에 돌아간 덕분에 소설가가 된 것 같습니다.”

이기호(35)씨의 단편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는 집단구타로 점철된 한 소설가의 청소년기를 유머러스하게 그린 소설이다. 실제 이유도 알 수 없이 죽도록 얻어터지면서 성장기를 보냈다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자전소설이라는 기획 아래 쓴 작품인데, 5일 만에 썼어요. 처음엔 저도 나름대로 고상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봤는데 죽었다 깨도 안 찾아지더라구요. 그래서 아예 내 인생에서 가장 비참했던 기억을 쓰자 했더니 너무 빨리 써졌습니다.”(웃음)

소설은 오로지 우연에 의해 집단폭력의 제물로 선택된 한 운 나쁜 소년이 반복되는 경찰조서 작성 과정을 통해 글쓰기에 눈을 뜨게 되는 내용이다. “개인이든 사회든 폭력은 너무 우연적이어서 논리적인 체계로 설명할 수가 없어요. 이 우연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하다가 예전에는 정말 아픈 추억이자 공포였는데, 지금은 그 폭력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유머러스하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작가란 그런 식으로 자신을 희극화하면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상처를 이겨내는 존재 아닐까요.”

이씨는 첫 소설집 <최순덕 성령 충만기> 를 내고 슬럼프를 겪었다고 한다. “원래 소설가소설을 굉장히 싫어하는데, 이제야 소설가들이 왜 소설가에 관한 소설을 쓰는지 알겠더라구요. 첫 책을 내고 뭔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 정리해야 할 것들이 생겼어요. 소설가로서의 자의식이랄까, 그게 요즘 자꾸 소설가소설을 쓰게 하는 듯합니다.”

소설이 잘 안 풀릴 때면 종로통을 하염없이 걷는다는 그는 “약장수나 뱀장수들이 행인들에게 소리치는 말들을 들어 보면 내 소설의 문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선연히 깨닫게 된다”고 했다. 찜질방에 불이 나 소방사다리를 두 번이나 타고 내려올 정도로 우연의 총애를 받았지만, 온갖 핍박과 억압 속에서 우연에 대처해온 그의 내력이 약장수, 뱀장수보다 구성진 문장의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 심사평/ 근대문학 경계 안팎 넘나들어

일반적으로 이야기꾼이라고 하면 뛰어난 재주와 기교를 바탕으로 가벼운 흥미나 재미를 추구한다는 인상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기호는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만드는 재주와 소설의 형식에 대한 반성적 의식을 동시에 갖춘 작가이기 때문이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는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지만 작가가 대결하는 대상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이 작품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근대소설의 역사에서 추방당한 우연성이다. "근대이전의 소설이 우연에 의해 사건이 해결된다면 근대소설은 우연으로 시작해서 필연으로 끝나는 장르"라는 생각은 근대문학의 암묵적인 전제이다.

그런데 우연한 폭행의 반복과 변주로 요약되는 이 남자의 이야기를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이 남자가 겪었던 우연한 폭행은 아무리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인과율에 포획되지 않고 여전히 우연성의 범주로 남기 때문이다. 반복되고 변주되더라도 여전히 우연인 것, 필연적으로 우연성일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탐색. 작가는 '갈팡질팡'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그 말은 근대문학의 경계 안팎을 즐겁게 넘나들고 있음을 고백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 김동식

박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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