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은 일본의 평화헌법이 공포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평화헌법은 전쟁을 포기하고, 전력을 갖지 않으며, 교전권을 부인하는 '제 9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일본은 이 헌법을 활용해 전후 폐허에서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는데 성공했다.
● 대세가 된 일본의 개헌 움직임
그러나 오늘날 일본 사회에서는 이 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대세다. '아름다운 일본'을 외치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전후 처음으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워 자민당 총재에 당선됐고, 최근에는 "5년 내 개헌을 달성하고 싶다"고 호언할 정도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국민의 대다수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개헌은 일본 보수ㆍ우익 세력의 오래된 화두이자 염원이었다. 1955년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자유당과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의 민주당이 합당해 자민당을 만든 것은 보수합동으로 개헌을 쟁취하자는 의기의 투합이었다. 이들에게 미군정 하에서 만들어진 평화헌법은 치욕적인 패전의 부산물이었고, 헌법 개정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의 회복이었다.
하지만 자민당이 개헌 논의의 물꼬를 튼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에나 가능했다. 개헌을 입에 담았다가는 정권 유지가 힘들 정도로 사회적 거부감이 컸기 때문이다. 결국 최근 개헌 논의가 실행 단계로 접어든 것은 개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일본의 우경화를 걱정하고 있는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난감한 것이 사실이다. '자위군 보유' 등을 명기한 자민당의 개헌안을 바라보면서 일본의 개헌 움직임 그 자체를 '군국주의로의 회귀'라고 단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단편적인 비판은 정확한 상황 판단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자제할 필요가 있다.
일본 국민이 원하는 개헌은 평화헌법의 핵심인 9조의 개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평화와 인권을 더욱 강화하는 '호헌(護憲)적 개헌'(일본공산당), 국가권력의 자의적 해석을 거부하는 '창헌(創憲)'(민주당), 9조와는 별도로 인권을 보다 중시하는 '가헌(加憲)'(공명당) 등 고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지난해에는 '시민 입헌(立憲)안 2005'와 같은 진보적 개헌안이 등장하는 등 개헌은 일본 사회에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타고 있다.
일본의 개헌 논의는 여러 가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뒤처진 낡은 헌법을 자신들의 손으로 고치겠다는 주권 행사의 측면이 많다는 것이 객관적 사실에 가깝다.
● '군국주의 회귀'로만 볼 것인가
물론 '군국주의로의 회귀'가 의심되는 개헌이 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매우 작다고 본다. 만에 하나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에 대한 대가는 고스란히 일본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일본 사람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다. 세상은 나름대로의 명분과 필연성으로 급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총체적 혼란으로 우왕좌왕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철훈ㆍ도쿄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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