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도착을 낮 시간으로 바꿔라.” “택시도 타지 마라.” “경찰도 믿을 수 없다.”
아프리카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 주재원들은 기자가 현지로 출발하기 전에 이메일과 국제전화를 통해 이같이 신신당부했다. 현지 주재원들의 ‘살벌한 조언’에 취재 일정이 힘들 것이라는 각오는 했지만, 기자가 목격한 서아프리카 최대 도시(인구 1,300만명)인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치안 상황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나빴다.
지난달 20일 중동의 두바이에서 7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라고스의 무탈라 모하메드 국제공항. 이 곳은 섭씨 30도를 넘는 찌는 듯한 무더위에 습기도 높아 사우나처럼 후텁지근했다. 라고스 시내로 접어들자 현대식 건물과 세련된 옷차림의 남녀들 속에 난민촌 같은 빈곤과 무질서가 뒤엉켜 묘한 부조화를 연출했다.
나이지리아는 세계 8대 산유국이면서도, 전체 인구(1억6,000여만명)의 70%가 하루 1달러로 연명하고 있다. 극심한 빈부격차를 보여주듯 ‘벤츠 600’ 등 최고급 승용차부터,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로 찌그러진 차량들이 신호등도 없는 4차선, 혹은 2차선 도로에서 곡예를 하듯 난폭하게 질주했다.
현지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교통이든 치안이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도심의 은행 지점들도 화력과 기동력에서 경찰을 능가하는 무장 강도들에 의해 털리고 있다”고 전했다. 석유공사 라고스 사무소의 노상금 팀장은 “밤에는 물론 낮에도 거리를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없다”며 “이 곳에 온지 4개월이 됐지만 개인적 외출은 꿈도 못꾸고 있다”고 말했다.
라고스의 니제르 부두에서 해상 설치용 가스플랫폼 건조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유근완 차장은 “6월 대우건설 직원들이 납치됐다 풀려난 포트 하코트를 비롯, 와리 등 유전지대로 가면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며 “심지어 15m 떨어진 옆 건물로 가려해도 무장 경관과 함께 차를 타고 움직여야 할 정도”라고 치안부재 상황을 지적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제 오일메이저들을 비롯한 세계 석유업계 관계자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고 있다. 세계 8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의 막대한 석유에 눈독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최근 대표적인 유전지대인 니제르강 델타지역의 육상 및 인근 해상의 개발여지가 줄어들자, 추정 매장량 50억 배럴이 넘는 기네만의 심해유전으로 탐사의 눈길을 돌리고 있다. 통상 수심 1,000~2,000m의 바다 밑에 시추공을 박는 심해 유전개발은 육상탐사 보다 비용이 3~4배 이상 더 들어 고유가 추세로 접어들기 전에는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유가가 배럴당 50~60달러로 치솟자 마지막 남은 황금유전으로 각광 받으면서 탐사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다른 지역의 탐사 성공률은 기껏 5%, 운 좋아야 10% 정도에 불과하지만, 기네만 심해유전의 경우 무려 30~5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지리아는 심해 유전탐사를 통해 현재 하루 생산량 250만 배럴을 2010년까지 450만 배럴로 늘린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아프리카 자원개발에 뒤늦게 진출한 한국은 지난해 심해 유전광구 2곳에 대한 탐사권을 따냈다. 이들 광구의 탐사권 수주경쟁에는 전세계 오일 메이저를 포함해 350개 회사가 참여했다. 한국은 현지에 발전소를 지어주는, 차별화한 조건을 내걸어 광구를 따내는데 성공했다. 중국도 플랜트와 석유광구를 연계하는 방식으로 올 5월에 4개의 광구(1곳은 해상, 나머지는 육상)를, 인도도 심해 광구 2곳을 각각 손에 넣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국제 오일 메이저들도 현지 유전개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미국 엑슨 모빌의 나이지리아 자회사는 다른 오일메이저 및 투자기관과 공동으로 총 600억 달러의 자금을 조성해 심해 유전개발에 추가 투입키로 했다.
라고스(나이지리아)=박진용기자 hub@hk.co.kr
■ 토니 추쿠에케 석유성 국장 "메이저社 독점해온 지역도 한국 등 亞기업 참여 허용"
“심해유전 뿐 아니라 다국적 오일 메이저들이 원유를 독점 개발해온 니제르 델타지역(육상 및 늪 지역 유전지대)에도 석유공사 등 한국 기업들의 신규 참여를 허용할 방침이다.”
미국계 다국적 기업인 쉘사의 엔지니어 출신으로, 나이지리아 석유정책의 실무를 총괄하는 토니 추쿠에케(50ㆍ사진) 석유성 국장은 외국기업에 대한 석유정책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변했다. 그는 “1960년 나이지리아에서 원유가 처음 발견된 이후 유럽과 미국의 오일 메이저들이 개발을 주도해 왔다”면서 “하지만 이제부터는 한국 중국 인도 등 아시아 기업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석유정책의 일대 전환은 오일 메이저들에 의해 나이지리아 유전개발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막고, 석유개발 주체를 다양화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지역 주민들이 무장 강도로 돌변, 오일 메이저들을 공격하는 니제르 델타 지역의 치안 불안이 지속되는 것도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오일 메이저들이 돈벌이에만 치중한 채 유전을 개발하면서 환경을 오염시켜 농사도, 어업도 할 수 없게 된 지역민들의 불만이 고조돼 왔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지역의 기업들이 심해지역 유전 뿐 아니라 니제르 델타지역에도 진출해 지역사회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범죄도 줄이고 지역사회의 발전에도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진용기자
■ 석유공 라고스사무소 "시추선 확보가 관건"
“아직 시추선을 확보하지 못해 걱정입니다.”
라고스 시내 옛 외교가에 있는 한국대사관 건물 3층에 자리한 석유공사 라고스 사무소. 6월부터 본사에서 파견된 8명(소장 포함)의 직원과 현지 채용인 7명 등 모두 15명을 데리고 하루 12시간씩 강행군을 하며 2008년 말 ~2009년 초로 예상되는 시추 작업을 준비중인 이진석(52) 소장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이 소장은 “앞으로 2년 뒤 사용하려면 미리 스케줄을 잡아 놓아야 하는데, 심해 원유개발이 러시를 이루면서 시추선 임대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수심 3,000m까지 작업할 수 있는 시추선의 하루 용선료는 지난해 초만 해도 16만 달러였으나 현재는 62만5,000달러로 4배가량 치솟았다. 그는 “가격이 너무 뛰고 있어 석유공사 본사에서는 3억 달러에 달하는 시추선을 자체 제작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공사가 시추공을 박아야 할 장소는 나이지리아 해안에서 100㎞ 정도 떨어진, 수심 1,500~2,500m에 자리한 OPL-321/323광구. 석유공사측은 현재 시추 포인트를 잡기 위해 지질학적 탐사자료를 입수, 유망광구를 도출하는 서류작업을 진행중이다. 보급선 및 심해 원격조정 잠수 로봇 확보, 시추관련 용역업체 선정 등 준비일정을 감안하면 실제 시추작업은 앞으로 2년 후에나 이뤄질 전망이다.
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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