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길버트 지음ㆍ서은국 최인철 김미정 옮김김영사 발행ㆍ374쪽ㆍ1만4,900원
영국의 신경제학재단(NEF)이 얼마 전 178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행복지수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102등으로 나타났다. 경제력 10위권 진입을 앞둔 나라치곤 등수가 터무니없이 낮았는데도 그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삶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만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에는 ‘당신의 행복은 왜 항상 예측을 벗어나는가?’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복권에 당첨되고, 멋진 새 차를 사고, 짝사랑한 사람과 결혼하고, 목표로 삼은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가고, 일터에서 승승장구 승진을 거듭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막상 그런 일이 일어나면 생각보다 덜 행복하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런 부제를 붙였다. 행복에>
생각보다 덜 행복한 이유를 책은 우리의 상상에 치명적 결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복권에 당첨됐더니 돈 내놓으라는 사람이 들끓고, 새 차를 샀으나 주차전쟁과 꽉 막힌 도로는 여전하며,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려면 많은 밤을 책과 씨름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것들은 외면한 채 그저 좋은 결과만 떠올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막상 원하는 것을 이룬 뒤에야, 그 같은 ‘비용’이나 반대급부를 실감하며 그렇게 꿈꾸던 행복에서 차차 멀어진다고 한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결국 뇌 때문이다. 뇌는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회상하듯 현재를 기준으로 미래를 상상한다. 과거에 대한 회상은 이런 식이다. 교재 중인 커플에게 2개월 전 자신의 연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돌아보게 하면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느낌이었다는 대답이 많고, 두통 환자에게 전 날의 두통 정도를 회상하라고 하면 역시 어제의 두통이 현재의 두통 정도와 비슷했다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과거를 기억할 때 뇌는 오늘이라는 재료를 빈 곳에 채워넣는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배가 고픈 상태에서 미래의 배고픔을 떠올리지 못하듯, 오늘과 전혀 다른 내일을 상상하지 못한다.
뇌는 적응성도 매우 뛰어나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신체적 폭력이나 자연재해 등 불행한 일을 경험해도 대부분은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 매우 잘 지낸다. 뇌는 이처럼 현실 적응을 잘하지만 달리 표현하면 결국 우리는 뇌에 의해 현혹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흔히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여겨지는 돈과 자녀는 어떨까. 저자는 경제학자와 심리학자의 연구결과를 인용, 절대빈곤 상태에서 중산층에 이르는 동안은 부가 행복을 증가시키지만 그 다음부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연 5만 달러를 버는 미국인은 1만 달러를 버는 사람보다 훨씬 행복하지만 500만 달러를 버는 사람이 10만 달러를 버는 사람보다 훨씬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녀에 대한 생각도 의외다. 부부는 대개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만족도가 떨어지다가 자녀가 집을 떠날 때쯤 처음 그들이 누렸던 만족도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을 보면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는 행복 그 자체보다는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뇌의 작동 매커니즘에 주안점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행복에 이르는 길 따위는 제시하지 않는다. 흘러간 과거야 그렇다 쳐도 미래에 대한 상상에 이끌려 행복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경고를 보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 빗나갈 가능성이 있는 만큼, 미래 보다는 현재에서 행복을 찾자는 메시지가 조용하게 읽힌다. 중ㆍ고교 시절은 대학을 위해, 대학은 직장을 얻기 위해, 중년은 노년과 자식의 미래를 위해 사는, 즉 미래를 위해 현재를 지나치게 희생하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이런 메시지가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파스칼은 <팡세> 에서 많은 사람이 행복을 미래에서만 찾으려 하기 때문에 그것이 지금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고 했다. 미래를 위한 준비는 필요하지만, 그것에 끌려가는 삶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팡세> 행복에>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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