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경 지음 / 민음사 발행, 308쪽, 9,500원
돈, 시간, 재미. 삶을 윤택하게 하는 생의 필수요소. 그러나 우리 같은 갑남을녀를 상대로 이 3박자는 단 한 번도 화음을 내는 법이 없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으며, 어쩌다 ‘실수로’ 돈과 시간을 양 손에 쥐게 될 때면 재미란 녀석이 끝내 결석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삼각사랑처럼 돈과 시간과 재미는 제 갈 길로만 나가며 후기산업사회의 이 가련한 노동자들을 희롱한다.
최재경의 <플레이어> 는 바로 이 지점에서 탄생했다. 원하는 시간에 재미있게 놀면서 돈을 벌 수는 없을까. 이때, 연예인 될 깜냥이 없는 우울한 자들에게도 실컷 놀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축복의 복음이 전해지니, 바로 인류의 희망과 염원을 담은 신종직업, 플레이어(PlayerㆍPL)의 탄생이 그것이다. 플레이어>
323만원짜리 에어컨에 32만3,000원짜리 가격표를 붙였다가 회사에서 잘린 홈쇼핑 업체 MD 유노는 의뢰인을 대신해 놀아주고 돈을 받는 이색직업 플레이어를 소개받는다. 시간이 없거나, 용기가 없거나, 재능의 부족으로 몸소 놀 수 없는 부유한 의뢰인들을 대신해 휴양지로 휴가를 떠나기도 하고, 절세미녀와 불륜을 저지르기도 하며, 성형수술이나 성전환수술을 받는 게 ‘천국의 섬 프로젝트’에 소속된 이들의 업무. 조건은 ‘놀이 경험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말 것’ 등 5개항뿐이다.
이 ‘좋은 것들’을 직접 하지 않는다는 게 도무지 납득되지 않지만, 유노는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쓰다’는 식의 논리야말로 인간을 불행에 빠뜨리는 편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52쪽)에 이 직업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놀이에서 느끼는 나의 이 재미는 잉여물 없이 소유권을 이전할 수 있는 것일까. 놀이를 ‘연기’하던 유노는 점점 더 일에 몰입하게 되면서 자신과 의뢰인을 혼동하게 되고, 종내 나는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 고민에 직면하고 만다.
소설은 유노의 이야기에 놀이와 삶을 등치시켜버린 트랜스젠더 혜리, 상처와 비밀이 많은 제인, 혜리를 좋아하는 미니 등 여러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중첩시키며 추리소설의 얼개를 엮어가지만, 발상의 참신함에 비해 서사를 풀어가는 방식이 구태의연하다. ‘천국의 섬’ 기획자의 정체가 탄로나고 플레이어라는 직업을 만들어낸 배후의 음모가 드러나는 결말 부분은 그 지나친 통속성과 황당함으로 읽는 이를 허탈하게 한다.
장편소설 <반복> 과 소설집 <숨쉬는 새우깡> 을 쓴 작가는 대학시절 015B의 작사가와 방송작가로 활동했으며 여성자기계발서 <여자 서른, 자신있게 사랑하고 당당하게 결혼하라> 등을 쓴 이력이 있다. 사건의 진행과정이 드라마 대본처럼 성긴 것은 이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좋은 소재인데, 탕진된 듯싶어 아쉽다. 여자> 숨쉬는> 반복>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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