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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놀아주고 돈버는 플레이어… 행복할까

입력
2006.11.0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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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경 지음 / 민음사 발행, 308쪽, 9,500원

돈, 시간, 재미. 삶을 윤택하게 하는 생의 필수요소. 그러나 우리 같은 갑남을녀를 상대로 이 3박자는 단 한 번도 화음을 내는 법이 없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으며, 어쩌다 ‘실수로’ 돈과 시간을 양 손에 쥐게 될 때면 재미란 녀석이 끝내 결석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삼각사랑처럼 돈과 시간과 재미는 제 갈 길로만 나가며 후기산업사회의 이 가련한 노동자들을 희롱한다.

최재경의 <플레이어> 는 바로 이 지점에서 탄생했다. 원하는 시간에 재미있게 놀면서 돈을 벌 수는 없을까. 이때, 연예인 될 깜냥이 없는 우울한 자들에게도 실컷 놀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축복의 복음이 전해지니, 바로 인류의 희망과 염원을 담은 신종직업, 플레이어(PlayerㆍPL)의 탄생이 그것이다.

323만원짜리 에어컨에 32만3,000원짜리 가격표를 붙였다가 회사에서 잘린 홈쇼핑 업체 MD 유노는 의뢰인을 대신해 놀아주고 돈을 받는 이색직업 플레이어를 소개받는다. 시간이 없거나, 용기가 없거나, 재능의 부족으로 몸소 놀 수 없는 부유한 의뢰인들을 대신해 휴양지로 휴가를 떠나기도 하고, 절세미녀와 불륜을 저지르기도 하며, 성형수술이나 성전환수술을 받는 게 ‘천국의 섬 프로젝트’에 소속된 이들의 업무. 조건은 ‘놀이 경험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말 것’ 등 5개항뿐이다.

이 ‘좋은 것들’을 직접 하지 않는다는 게 도무지 납득되지 않지만, 유노는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쓰다’는 식의 논리야말로 인간을 불행에 빠뜨리는 편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52쪽)에 이 직업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놀이에서 느끼는 나의 이 재미는 잉여물 없이 소유권을 이전할 수 있는 것일까. 놀이를 ‘연기’하던 유노는 점점 더 일에 몰입하게 되면서 자신과 의뢰인을 혼동하게 되고, 종내 나는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 고민에 직면하고 만다.

소설은 유노의 이야기에 놀이와 삶을 등치시켜버린 트랜스젠더 혜리, 상처와 비밀이 많은 제인, 혜리를 좋아하는 미니 등 여러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중첩시키며 추리소설의 얼개를 엮어가지만, 발상의 참신함에 비해 서사를 풀어가는 방식이 구태의연하다. ‘천국의 섬’ 기획자의 정체가 탄로나고 플레이어라는 직업을 만들어낸 배후의 음모가 드러나는 결말 부분은 그 지나친 통속성과 황당함으로 읽는 이를 허탈하게 한다.

장편소설 <반복> 과 소설집 <숨쉬는 새우깡> 을 쓴 작가는 대학시절 015B의 작사가와 방송작가로 활동했으며 여성자기계발서 <여자 서른, 자신있게 사랑하고 당당하게 결혼하라> 등을 쓴 이력이 있다. 사건의 진행과정이 드라마 대본처럼 성긴 것은 이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좋은 소재인데, 탕진된 듯싶어 아쉽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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