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간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책을 만들며 봉사활동을 해 온 비장애인이 있어 80돌 ‘점자의 날’(4일)을 맞아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부산 점자도서관 총무기획과에서 도서관 활동 프로그램과 살림을 챙기는 최정규(34ㆍ사진)씨는 매일 일과를 마치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가 책상 앞에서 소설책, 시집 등 각종 책과 씨름을 한다.
책상에는 손가락 끝의 촉각으로 요철(凹凸)을 파악해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두껍게 제작된 점자지와 이를 끼우고 책받침처럼 쓰는 점판, 점자를 새기는 점필 등 각종 점자용 필기도구가 가득하다.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보통 글자로 된 책을 점자로 옮기는 점역(點譯)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최씨가 점자에 매료된 것은 대학 시절 시각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면서부터. 그는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1999년 졸업한 뒤 모 건설회사에 취직했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사표를 내고 박봉의 점자도서관 사회복지사로 인생행로를 바꾸었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회계장부를 정리하는 것보다 점자 타자기를 두드리고 점자책을 정리할 때 ‘존재의 이유’와 자부심을 더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점자가 좋고 점역이 즐거워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고 말한다.
점자 타자기와 점자 프린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최씨는 1998년 점역ㆍ교정사 자격증을 전국 최고의 성적으로 따냈으며 2002년 국가공인 자격시험으로 전환되자 다시 응시, 합격률이 10~20%에 불과한 ‘좁은 문’을 통과했다.
점자에 매료된 최씨가 정기 간행물이나 각종 서류 등 통상적인 인쇄물을 제외하고 자투리시간을 활용해 틈틈이 점역한 책만 100여권에 달한다.
그는 “시각장애인은 돈이 있어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책을 읽을 수 없고 ‘읽을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하다 보니 정보에서 소외된다”며 “매일 쏟아지는 인쇄물의 홍수에 힘들어 할 시각장애인을 생각하면 잠 잘 시간도 아깝다”고 말했다.
부산 점자도서관은 최씨의 헌신적인 봉사활동과 ‘점자 사랑’을 격려하기 위해 3일 제80회 점자의 날 기념식에서 우수직원상을 새로 만들어 그에게 수여했다.
부산=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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