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코카인 1,200㎏을 남미 수리남에서 아프리카 세네갈로 밀반입하려던 국제마약조직이 브라질 항구에서 붙잡혔다. 4,000만 명분(1인 1회 흡입량 0.03g), 3,600만 달러(약 340억원)에 달하는 브라질 사상 3번째 큰 규모의 마약 적발이었다.
검거 과정에서 한국인 원양어선 선장 김철수(50ㆍ가명)씨의 목숨을 건 ‘선상 마약조직원 제압, 한국 대사관 신고, 한국으로의 탈출’로 이어지는 극적인 사연은 큰 화제가 됐다.
김씨는 정글에서 생산되는 광석을 세네갈까지 실어주면 10만 달러를 주겠다는 ‘조직’의 말을 믿고 선뜻 응했으나 광석이 아니라 코카인으로 밝혀지자 목숨을 걸고 브라질 한국대사관에 신고했다. 김씨는 당시 신변의 위협과 외교통상부 주선에 따라 생활의 터전인 남미 수리남을 떠나 지난해 10월 1일 빈손으로 귀국했다.
그후 1년 남짓 지난 김씨는 마약 조직의 보복이라는 악몽에 떨며 비참하게 살고 있다. 귀국하면 ‘보상이 가능할 것’이란 정부 관계자의 말은 온데 간데 없다. 김씨는 “지금 내 처지를 보면 누가 마약 범죄를 신고하겠냐”며 눈물로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는 1년 전 외교관들과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인생에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인천공항에 내리는 순간 버림받았다. 정부는 그를 외면했다. 무일푼에 별다른 국내 연고도 없어 알코올 중독자 요양기관 등에서 4개월을 지냈다. 올 2월부터는 선박회사에서 바다쓰레기를 치우는 잡일을 하고 있다. 잠은 배 안이나 아무데서나 잔다.
한국에서 그는 없는 존재다. 마약 조직의 보복이 두려워 신분증도 못 만든다. 남미에서 그들이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이는 광경을 수도 없이 봤다. ‘내게도…’하는 생각이 들면 소름이 좍 끼친다. 그나마 지금 하는 일도 회사에서 그만 두라고 한다. 그의 사정을 안 뒤 불안해서 같이 일할 수 없다는 뜻인 것 같다. 겨울이 다가오는데 길거리에 나앉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검찰은 처음에는 당장이라도 보상을 해줄 것처럼 말했다. 브라질에도 신청해보겠다 했다. 그런데 1년 내내 검토 중이라고만 하다 얼마 전 “국외 발생 사건이라 보상하기 어렵다”고 못박았다. 옛 일은 잊고 새 인생을 개척해 보라는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만 했다.
그는 “보상이 문제가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이 다시 나와선 안 된다”며 “거대 국제마약조직에 맞서 목숨 걸고 신고했는데 나라에서 나 몰라라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1년 전, 눈 딱 감고 마약을 운반해 주고 10만 달러를 받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는 “지금 국내에서 생산되는 마약이 어디 있느냐”며 “그때 내가 신고한 마약이 국제 조직을 통해 이 땅에 들어왔을 수도 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마약이 퍼지건 말건 그저 조국이 원망스러울 뿐이라고 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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