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ㆍ7 중간선거가 일 주일도 채 남지 않은 미국에서 전자 투표기를 통한 ‘투표 조작’ 논란이 뜨겁다. 전자 투표기는 유권자가 투표 용지에 기표하는 절차 없이 터치스크린을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결과가 메모리 카드에 저장되는 방식이어서 전문가들도 조작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특히 격전지에서 투표 결과를 놓고 조작 논란이 일 경우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일 밤 미국 유료 케이블 채널인 HBO는 <민주주의 해킹하기> 라는 도발적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전자 투표기 사용을 반대하는 웹사이트인 ‘블랙박스보팅(blackboxvoting.org)’을 운영하는 비브 해리스 등이 출연, 전자 투표기의 투표조작 위험성을 제기했다. 해리스씨는 캘리포니아와 플로리아 일리노이 뉴저지 주 등에서 사용하는 세쿼이아 전자 투표기를 실험한 결과 해킹 기술이 없는 일반인까지도 투표조작을 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기계 뒤쪽의 노란색 버튼을 3초 동안 눌러 자동 방식을 수동 방식으로 바꾸면 한 사람이 몇 번이고 투표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최근 프린스턴대 연구진이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도 네티즌 유권자들에게 충격을 던졌다.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선거조작 프로그램을 디볼드사(社)의 전자 투표기의 메모리카드에 심어 결과를 간단히 조작하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제작했다. 디볼드의 투표기는 이번 선거에서 357개 카운티에서 전체 유권자의 10%가 사용할 전망이다. 이 동영상에는 투표 전 기술자들이 프로그램에 오류는 없는지 점검하는 과정도 보여주는데, 해킹 프로그램이 사용됐는데도 오류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온라인으로 연결된 투표기는 한 기계에만 해킹 프로그램을 심어도 바이러스처럼 여러 기계에 전염될 수 있다.
미국에서 터치스크린 방식의 전자 투표기가 도입된 것은 2000년 대선에서 수십년 전 기술인 천공카드 방식의 투표가 문제를 일으켜 재검표 사태까지 발생한 후다. 2004년 대선 때도 일부 사용됐던 전자투표 방식은 이번 중간선거에는 전체 유권자의 40% 가량이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신속한 결과 집계와 무효표 감소, 선거 분쟁 감소 등을 목적으로 도입된 이 방식이 역설적으로 해킹에 의한 선거 조작 논란을 부르고 있다.
게다가 올해 예비선거에서 전자투표기를 시범 도입한 몇몇 주에서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속출했다. 메릴랜드주에서는 컴퓨터가 정당기표를 잘못 판독하거나 투표기의 메모리 카드가 전송이 안 되는 상황이 빚어졌고, 몽고메리 카운티에서는 직원의 조작미숙으로 1만1,000명의 유권자가 예비로 마련된 종이 투표지에 기표해야 했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유권자들에게 종이투표 선택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제출됐고, 뉴멕시코와 코네티컷주에서는 아예 전자투표기 사용계획을 백지화했다.
최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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