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뒤비 지음ㆍ채인택 옮김 / 생각의나무, 373쪽, 12만원
올해 노벨문학상을 탄 오르한 파묵은 그의 조국 터키가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아르메니아인과 쿠르드인을 학살한 어두운 역사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국가모독행위로 기소됐다.
그 ‘어두운 역사’를 터키 정부는 가리고 있지만, 터키 지도는 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지도로 보는 세계사> 의 194쪽을 펼친다. ‘현대 터키의 형성’이라는 제목 아래 손바닥만한 크기로 놓인 지도는 터키 근대화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케말 정부가 1920년대 초 전쟁으로 삼킨 아르메니아와 쿠르디스탄 영토를 붉은 선분들로 표기하고 있다. 또 지도 아래 첨부된, 짧지만 압축적인 전문가의 글은 이 지도의 전후(前後)를 해설한다. 지도로>
아날학파의 거두 조르주 뒤비가 책임 편집하고 각 시기ㆍ지역별 역사 전문가 100여 명이 참여해 만든 대형 판본의 이 책은 인류역사를 520컷의 지도로 담았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광활한 땅 위에 섰던 로마제국의 부침, 고대 유럽을 뒤흔든 훈족 게르만족의 대이동, 거듭된 중동의 전쟁 상흔 등이 지도를 통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책은 물론 유럽사 중심이다. 유럽인의 시야에서 벗어난 나머지 대륙의 독자적 역사는 상대적으로 허술하고, 한반도의 역사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3년과 아시아의 주요 긴장지대(북한의 핵 위협) 등 4페이지에 불과하다. 민족주의적 의분을 터뜨리기에 앞서, 적어도 그들의 관점에서는, 세계사의 무대에서 우리 역사의 동선이 그만큼 협소했음을 이 책은 이야기한다.
이 번역본은 78년 프랑스 라루스출판사의 초판 발행 이후 이어진 개정판 가운데 2002년 판본을 텍스트로 삼았다. 책머리에 얹힌 “역사는 땅 위에 기록된다”는 뒤비의 문장으로 시작되는 서문도 읽을 만하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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