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주요 대학들의 입시전형에서 논술시험의 비중이 점점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대입 경쟁은 논술이라는 엔진을 하나 더 장착한 셈이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물론 모든 일선학교와 입시학원에서도 논술에 대한 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심하고 있다.
● 대입 경쟁의 하부구조로 변질
정작 논술이 무엇인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호한 상태에서 수많은 논술 교재들이 잘 팔리고 있으며, 논술학원들도 성업 중에 있다. 인문교양서적 출판사들도 아무 책에나 논술참고서라는 광고 문구를 집어넣어 논술 특수에 편승해보려는 꾀를 쓰곤 한다. 또 신문이나 잡지들에서도 어린이논술코너까지 만들어 학부모의 약한 마음을 이용하곤 한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국회에서 교육부장관에게 논술교육 대비책을 따지기도 했고, 서울대에서는 고등학교 교사들을 상대로 논술지도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동안 사교육시장에서 주로 이루어지던 논술교육이 공교육의 차원에서도 이루어져야 하며, 제대로 된 논술교육 프로그램을 책임있는 기관에서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요청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다가 고등학교 교육에 논술이라는 과목이 또 하나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대입 논술의 출제 채점 특강 등에 관여한 체험이 있고, 국어교육과 교수로 있다보니 주변 사람들로부터 논술과 관련된 문의를 자주 받는 편이다. 아주 가끔 논술과 관련된 상업적 제의를 받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모든 제도를 왜곡시켜 버리는 입시경쟁의 무서운 힘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특목고 또는 내신이나 수행평가와 같이 논술도 입시경쟁 속에서는 이상하게 변질되고 왜곡되어 그 경쟁의 하부구조화되어 버리는 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논술이란 어떤 문제나 상황에 대해서 충분한 이해와 지식을 갖고 그것을 토대로 어떤 판단이나 결론에 논리적으로 이르는 사유가 정확한 글로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떤 종류의 공부(과목)라기보다는 공부의 형식이나 구조 같은 것이다. 그 구조는 어떤 과목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
가령 임진왜란의 발발 원인에 대한 국사 공부도 논술공부이며, 각종 측정치를 해석하고 선별하여 대기오염도를 산출하는 과학 공부도 논술공부가 된다.
정확하고 효율적인 문장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논술은 국어 과목과 관련성이 제일 높긴 하지만, 논술이 어떤 과목에 속한다거나 논술이 하나의 과목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어떤 과목의 공부라도 잘 하게 되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 논술력이다. 이런 점에서 원칙적으로 논술은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
● 논술의 '입시 과목'화는 안된다
다른 과목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논술만 못할 수는 없다. 그런 학생은 다른 과목 공부도 제대로 잘 하는 것이 아니다. 논술력이 강하면 어떤 과목의 공부라도 좀더 쉽게 잘 할 수 있고 그 반대도 참이다.
바로 논술의 이런 특성 때문에 대학입시나 각종 고시에서 논술시험이 정당성을 갖는다. 고액과외가 소용없고, 단기완성이 거의 불가능하고, 그러면서도 종합적인 학습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것이 논술시험의 의의이다.
거센 논술돌풍 속에서 공교육도 논술교육을 외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논술이 또 하나의 과목이 되는 순간 논술의 목적과 의의는 사라지고 입시 부담으로만 남을 것이다. 논술시험이 입시 준비의 딜레마라면, 논술교육은 논술의 딜레마이다.
이남호ㆍ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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