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담당 기자로서 패션계를 다룬 영화를 보지않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를 봤다. 마침 지난 주말 외화로는 7주만에 처음 한국영화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관람평도 다양했다. 평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악마는>
# 1: 영화속 옷이 너무 멋지더라.(당연히! 의상을 담당한 패트리샤 필드는 역시 패션이 주인공만큼이나 한 몫하는 미국 인기 드라마 <섹스 앤 시티> 의 의상감독으로도 유명하다) 섹스>
# 2: 옷이 바뀐다고 패션 문외한이 갑자기 패션계 생존경쟁의 우승자가 될 수 있나?(영화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 3: 패션계 여성들을 겉치장과 공짜에 환장한 속물 취급을 하는 것 같아 기분 나빴다.(이건 주로 패션계 종사자들의 평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자에게는 이 영화가 드디어 ‘할리우드를 접수한’ 럭셔리업계의 호사스러운 자축연처럼 보였다. 패션잡지 <보그> 미국판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의 전직 비서가 쓴 원작소설이 이 막강파워 편집장의 까탈스러움과 패션계의 허영을 폭로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반면 영화는 짐짓 그 허영을 비꼬는 척 면죄부를 준다. 보그>
사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최고의 잡지를 만드느라 고군분투하는 편집장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고(그녀의 괴팍함에는 이유가 있다), 벨트를 선택하는 행위 하나가 수십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한다(패션은 산업이다)는 식이다. ‘누군가에게는 무가치한 패션이 어떤 시골소년에겐 평생의 꿈과 희망을 건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는 대사에 이르면 거의 가슴이 뭉클해진다.
패션계나 모델이 등장하는 영화는 꽤 있지만 그중 패션계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는 <악마는…> 과 더불어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1995년작 <패션쇼> 가 있다. <패션쇼> 는 파리프레타포르테 컬렉션을 배경으로 패션계 이면의 암투를 통렬히 풍자한 블랙코미디다. 영화 마지막 패션쇼 장면에서 모델들은 올 누드로 무대에 선다. 허영과 위선을 벗으라는 조롱의 의미. <패션쇼> 와 <악마는…> 에 이르는 10년 세월의 간극은 그만큼 크다. 악마는…> 패션쇼> 패션쇼> 패션쇼> 악마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대중문화에서 패션은 중요한 한 축이다. 패션감각은 스타로서의 자질을 말해주는 바로미터다. 시청률이나 예매율을 높이려면 주인공들의 화려한 의상은 필수다.
촬영중인 영화 <중천> 은 세계적인 영화의상 전문가 에미 와다를 영입했다. 할리우드라고 다를 리 없다. 호화찬란한 의상은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한다. <섹스 앤 시티> 의 성공은 태반이 주인공들이 휘감은 럭셔리브랜드에서 나온다. 샤넬 에르메스 지미추 마크제이콥스 등 수많은 브랜드들이 영화나 드라마의 환상적인 공간을 채우고, 그럼으로써 브랜드 파워를 강화한다. 섹스> 중천>
<악마는…> 은 레드카펫 위의 배우들을 입히는 데 만족했던 세계 럭셔리브랜드들이 이제 할리우드에 새로운 흥행공식을 제공할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기 폄하와 풍자는 ‘죽음으로써 사는’ 내공의 산물. 그런들 어떠랴, 여주인공의 변심을 질타하는 충직한 친구조차도 그녀가 선물한 1,700달러짜리 럭셔리 가방을 덥석 받으며 “아무튼 예쁘잖아!”라고 외치는 세상 아닌가. 악마는…>
이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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