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어나라 주몽의 후예들! 우리 활이 부른다
MBC의 사극 <주몽> 의 열기가 뜨겁다. 매회 4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몇 개월째 안방극장을 호령하고 있다. 다양한 요소가 드라마의 재미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특히 시청자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주인공 주몽의 활솜씨이다. 눈을 천으로 가린 채 화살을 과녁에 명중시키는가 하면 한꺼번에 두세 개의 화살을 날리고, 날아오는 화살을 쏘아 떨어뜨리기도 한다. 주몽이 활시위만 당기면 사람들은 짜릿한 긴장감에 이어 가슴이 후련해지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주몽>
우리 민족의 옛 이름이 동이(東夷)족인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 ‘대륙 동쪽에 사는 큰 활(大+弓)을 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듯 우리 전통무예의 선두에는 언제나 활이 있었다. 서양식 활쏘기인 양궁에서 그 후예들인 우리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 활쏘기(국궁, 궁도)는 상대적으로 크게 대중화하지 못한 채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드라마 <주몽> 의 인기에 자극을 받았을까? 우리 국궁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궁도인들의 대중화 노력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주몽>
최근 한국국궁문화세계화협회(국궁협회)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국고를 지원 받아 한국 궁술의 원형 복원을 위한 디지털 콘텐츠를 완성했다. 또 그 동안 거의 사라졌던 기사(騎射ㆍ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는 것)를 비롯한 기마궁술문화를 부활시키기 위해 서울 난지도 국궁장에 시설을 추진중이다.
현재 우리의 국궁인구는 2만5,000명에서 3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같은 전통무예인 태권도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조선시대까지 무인은 물론 문인들의 필수 수련 항목이 바로 궁술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초라할 정도이다.
국궁의 위세가 크게 꺾인 때는 조선말, 신식 총포가 군대에 보급되면서부터이다. 서양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사와, 거꾸로 우리 전통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하가 팽배했던 개화기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궁술은 갑자기 설 자리를 잃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고종 황제가 경희궁에 활터와 정자 황학정을 만드는 등 장려에 나섰지만 경희궁이 일제에 의해 철거되는 바람에 황학정이 사직동으로 옮겨지며 기운이 위축됐다. 우리 민족 문화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편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궁술에 대한 인식이 더욱 약해진 것은 당연한 결과. 게다가 당시 궁술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식자층, 재산가 등 독립운동과 연관될 수 있는 ‘요주의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활터에서의 자유로운 활동이 쉽지 않았다.
그러면 해방이 된 지 6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국궁의 부활과 대중화가 미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궁도인들은 가장 큰 이유로 국궁에 대한 인식을 꼽는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일부 계층만 누리는 특수한 심신수련법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국궁은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비용으로 기본 장비를 갖추고 기초적인 입문교육을 받으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며 심신을 단련시킬 수 있는 전통무예이다. 현재 전국에 350여 개의 국궁장이 있는데 대부분 1개월 사용료가 2~3만 원 정도로 아주 저렴하다.
국궁의 대중화가 부진한 두번째 이유는 초ㆍ중ㆍ고등학교 등 교육 체계 안에서 국궁을 보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 거의 없다는 것. 체육교사 국궁 연수 등을 통해서 교육자들이 먼저 국궁을 접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보급하는 형식의 체계적인 대중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화살을 쏘아 과녁을 맞추는 단순한 경기방식도 개선의 필요가 있다고 한다.
드라마 <주몽> 에서 주몽의 활쏘기가 ‘멋있어 보이는’ 이유는 탤런트 송일국이 수년 전부터 국궁을 제대로 배운 준비된 연기자였기 때문이다. 활쏘기는 과녁을 맞추는 ‘결과의 무예’가 아니라 첫 자세부터 시위를 놓는 순간까지 전체를 중요시하는 ‘과정의 무예’이다. 주몽>
따라서 궁도계에서는 국궁은 궁술(弓術)이 아니라 ‘사예(射藝)’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심신을 수련하는 무예이면서 또한 몸과 마음, 자세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의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중구난방식 교육 방법을 통합할 수 있는 정통한 텍스트를 만들고 이를 각종 대회의 평가에 적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따져보니 난제가 하나 둘이 아니다. 크게는 세계적인 한류 열풍, 작게는 전국 드라마 촬영장의 인기 관광지화 등 인기 드라마의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한다. 드라마 <주몽> 에 힘입어 1세기만에 다시 날개를 펼칠 기회를 잡은 우리의 전통무예 국궁. 과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높이 날아오를 수 있을까. 주몽>
권오현기자 koh@hk.co.kr
■ '국궁 입문' 기초를 튼튼히
“흔치 않은 행사가 열린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간 곳은 경기 부천시립궁도장 안에 있는 국궁교육원. 막 초사례(初射禮)가 시작되고 있었다. 초사례는 기본교육을 받은 초심자들이 처음 사대(射臺)에 올라 활을 쏘는 의식이다. 국궁교육원의 나기영 교장이 초사례를 치르는 이들에게 직접 전통 복식을 입혀주고, 안전과 경건한 수련을 비는 고사를 지낸 뒤 첫 활쏘기를 했다.
이날 초사례를 치른 초심자들은 모두 9명. 짧게는 2개월, 길게는 5개월간 기본 수련을 받았다. 처음 배우는 것은 마음가짐이다. 활과 화살 등 장비에 대한 경외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활터에서의 예의범절, 시설물 이용법 등도 필수적이다.
이어 호흡법, 자세(발자세, 몸세우기 등), 시선, 표정 등의 교육이 이어진다. 이 부분이 활쏘기의 평생 습관을 결정짓는 중요한 과정이다. 나기영 교장은 “국궁은 힘이 아닌 균형감(valance)의 극치를 추구하는 수련이다. 그 균형감을 유지하는 기본 훈련이 되어 있다면 계속 깊이 있는 수련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마음이 멀어지고 만다. 그래서 처음 국궁을 접할 때 제대로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빈활, 화살 먹이기, 시위 당기기, 고침쏘기(계속 자세를 교정하는 과정) 등을 거치면 본인의 화살을 만들기에 들어간다. 키와 몸무게 등 신체 등에 따라 화살의 길이와 무게 등을 자기에 맞게 제작해야 한다. 본인의 화살이 만들어지면 사대에 서서 습사(연습으로 활을 쏘는 것)를 하는 마지막 단계에 돌입한다. 모든 과정에서 안전에 대한 교육이 필수적이다.
처음 국궁의 활을 당기면 대부분 그 힘에 기가 질려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초보자 교육은 힘이 약한 초등학생용 활을 이용한다. 개인적으로 팔의 근력을 키우는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힘을 강하게 하는 교육과정은 없다. 나 교장은 “무리한 근력 운동은 오히려 근육을 경직시킬 수 있다. 활쏘기에는 힘보다 균형과 유연함이 중요하다. 제대로 된 자세와 호흡법, 유연한 몸 상태를 유지하면 힘을 이용하는 것보다 오히려 쉽게 활을 당길 수 있다”고 말한다.
사대에 한 번 오르면 5개의 화살을 쏜다. 이를 ‘한 숨’이라고 한다. 과녁과의 거리는 145m. 사대에는 한꺼번에 7명까지 올라가는데 한 사람씩 차례대로 쏜다. 이렇게 한 숨을 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15분. 그리고는 함께 화살을 수거하러 표적으로 간다.
강도가 낮은 한가한(?) 무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활쏘기는 기(技), 체(體), 심(心)이 일체가 되어야 한다. 활에 화살을 먹이고 발사할 때까지 시간은 비록 10여 초에 불과하지만 기ㆍ체ㆍ심이 일치된 그 순간은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를 요구한다. 용력으로만 활을 쏘는 사람은 그래서 한 숨만 쏘아도 맥이 풀린다. 그러나 몸의 균형과 깊은 호흡, 그리고 유연함으로 쏘는 사람은 하루 종일 사대에 서있어도 지치지 않는다. 몸의 기가 축적되고 건강이 균형을 이루는 것은 물론이다.
국궁은 장비를 이용한 무예이다. 일반적으로 궁시일체(활, 화살, 궁대, 깍지)라고 한다. 초보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배운 곳에 의뢰해 일괄 구입하는 것이 편하다. 자신의 체격조건에 맞는 활과 화살에 대한 조언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인간문화재급 장인들이 만드는 각궁은 50만 원 이상, 전통 대나무 화살(죽시)은 개당 2만5,000원 이상으로 값이 비싸다. 활과 화살은 오래 쓰면 기능이 떨어지는 소모품이기 때문에 입문할 때에는 개량궁과 카본화살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개량궁의 가격은 20만 원에서 25만 원 정도이고, 카본화살(10개정도 필요)은 개당 7,500원 내외, 깍지는 1만5,000원 내외이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 국궁 대중화 첫 단계 디지털 콘텐츠 개발 마쳐
한국국궁문화세계화협회(국궁협회)는 최근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으로부터 국고를 지원 받아 <한국 궁술의 원형 복원을 위한 디지털 콘텐츠> 개발을 마쳤다. 인터넷을 통해 국궁이 일반인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콘텐츠는 원시시대는 물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에서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궁술의 변화를 다양한 2D, 3D로 구성해 놓았다. 활과 우리 역사ㆍ생활, 역사 속 활 쏘기의 으미, 활 쏘는 법 등을 디지털 영상과 함께 쉽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콘텐츠는 국내는 물론 외국에 소개 할 때에도 원천자료로 쓰여지게 된다. 한국>
작업을 총괄한 국궁협회의 연익모 총재는 “디지털 콘텐츠 개발은 국궁의 대중화, 나아가서는 세계화해 나가는 작업의 첫 단계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5,000년 전통무예인 국궁의 혼을 다시 살리려는 노력의 하나다. 국궁이 정체성 있는 전통생활스포츠로 자리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국궁협회가 현재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전통적인 우리 국궁의 복원. 우선 우리의 전통인 기사문화(騎射文化)를 토대로 한 마상궁술 재현 작업을 하고 있다. 말 타기와 궁술이 함께 어우러지는 마상궁술이 복원되면 역동적인 무예로서 뿐 아니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좋은 관광자원이 될 수도 있다. 복장, 동개(활집), 시복(화살집)을 원형대로 착용하고 활을 쏘는 문화도 보급할 예정이다. 국궁협회 www.bowkorea.co.kr
▲ 디지털 콘텐츠에 소개된 활쏘는 법 9단계
발디딤:비정비팔(非丁非八)의 자세를 취한다. 한국 활쏘기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중요한 동작이다.
화살정검:활쏘기에 앞서 화살의 상태를 살피는 것. 화살의 형태가 균형을 잡았는지 화살촉은 정상인지를 살핀다.
줌손:활의 줌통을 흘려쥐는 것. 활쏘기의 모든 것을 결정할만큼 중요하다. 모아 쥔 손가락이 똑바르지 않고 비스듬히 흘렀다.
살먹이기:시위의 절피(시위가 닳는 것을 막기 위해 끝으로 감아 놓은 부분)에 화살의 오늬(홈)를 끼우는 것. 총으로 말하면 장전이다.
들어올리기:절피 부분을 깍지손으로 들어 활의 하단이 아랫배의 불거름(방광 위의 단전)에 오도록 걸치는 단계. 숨고르기를 한다.
밀어당기기:줌손을 앞으로 밀고 깍지손을 뒤로 당기는 동작. 밀고 당기는 양손의 동작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만작:활을 가득 당겨 동작이 정지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 활쏘기의 최고 절정단계라고 할 수 있다.
발시:깍지손을 놓아 화살을 발사하는 것. 흔들리거나 균형을 잃으면 제대로 된 활쏘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잔신:발시를 하고 난 뒷동작이다. 학이 날개를 접든 유연하면서도 부드럽게 처리되어야 한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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