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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떠나자 - 안동 농암종택 '선비와의 하룻밤… 시름은 잠시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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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떠나자 - 안동 농암종택 '선비와의 하룻밤… 시름은 잠시 묻다'

입력
2006.11.0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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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오솔길의 종점인 농암종택을 지키고 계신 분은 농암 이현보(1467~1555)의 17대 종손인 이성원씨다. 기자와 이름이 같다. 종택에서 처음 만나 명함을 건네다가 그 이름 때문에 둘이서 크게 웃었다.

<어부사> 를 쓰고 강호문학을 대표하는 농암의 종택은 원래 도산서원 1km 아래인 분천리에 있었다. 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종택의 유적, 유물 등은 분천리와 안동시내에 흩어졌었다. 1996년 이성원씨가 이곳 도산면 가송리 올미재 마을에 새로운 터를 잡아 지금껏 종택과 서원 등을 복원하고 있다. 종택은 이날도 공사가 한창이다. 집을 아늑하게 두를 담장공사와 분강서원 복원공사가 진행중이다.

농암종택을 감싼 주변 풍경은 과연 ‘강호지락’을 추구했던 농암의 터전답다. 낙동강 물줄기와 청량산에서 흘러온 산자락이 서로를 굽이치며 희롱하는 절경 한가운데에 종택이 자리하고 있다. 이씨가 이 터를 처음 발견한 것은 1994년. 그는 “내 살던 주변에 깜짝 놀랄만한 터전이 때묻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고 했다.

국도에서 한참을 벗어나 여전히 오지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종택 앞으로 휘돌아 흐르는 낙동강은 ‘원천적인 강’의 모습을 띠고 있다. 백사장이 있고, 소가 있고, 물 안에는 눈부신 바위들이 솟구쳐 있다. 봉화군 명호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낙동강은 처음에는 청량산의 위세에 눌린 모양이다가 이곳 가송리 등 도산면에 이르러 산이 강을 돕고, 강이 산을 돕는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강의 모습은 도산서원 못미쳐 끝이 난다. 안동댐을 지난 물은 하회에서처럼 흙탕물이 되어 제 흐름을 잊고 사행하게 된다.

맑은 낙동강 물빛에 취해 퇴계 오솔길을 거닐다 보니 날이 저물었다. 종택의 방 하나를 얻어 밤을 보냈다. 교교히 흐르는 달빛 아래 창호지로 말갛게 걸러져 들려오는 밤의 소리. 먼 기억 속으로 떠나는 여행에 들뜬 채 고택에서의 하룻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농암종택은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일반에 개방됐다. 독립된 별채인 긍구당과 사랑채, 대문채 등 12개 방을 이용할 수 있다. 방에 따라 하룻밤 4~10만원의 이용요금을 받는다. 강물을 굽어보며 서있는 긍구당은 애초 고려시대에 지은 건물로 옛 선비의 풍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전화(054-843-1202)와 인터넷(www.nongam.com)으로 예약이 가능하다.

농암종택이 있는 가송리는 안동의 오지로 마을 그 자체 만으로도 훌륭한 여행지다. 가송리 쏘두들 마을 앞에는 병풍처럼 일어선 층층 절벽이 강물 위에 버티고 섰다. ‘고산협’이라는 이름의 절벽이다. 그 바로 옆에 ‘고산정’이라는 정자가 딱 있음직한 자리에 다소곳이 들어서 있다. 퇴계 이황의 제자인 금난수라는 이가 지었다. 퇴계는 청량산을 오가는 길 이곳에 들러 더불어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농암고택은 35번 국도에서 가송리 쏘두들로 진입하면 된다. 지난해 강변을 따라 포장진입로가 새로 났다.

안동=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도산서원·이육사문학관… 절개와 지조의 땅

안동시 도산면에는 퇴계의 그늘이 여전히 짙게 드리우고 있다. 퇴계와 농암을 낳은 이곳은 그들이 “정승자리와도 바꿀 수 없다”며 한사코 관직을 마다하고 내려와 강과 산을 벗삼았던 절경의 땅이다.

안동시에서 35번 국도를 타고 올라오다 한국국학진흥원을 지나 오른쪽의 동부리로 꺾어 들어와 4km가량을 달려 길 끝까지 가면 월천서당이다. 조선시대 월천 조목(趙穆)이 세운 곳으로 현판은 퇴계의 글씨다. 고즈넉한 마을 풍광 만큼이나 서당의 분위기가 아늑하다. 마을 앞에는 안동댐을 운항하는 배들이 정박할 수 있는 선착장이 있다. 월천서당 가는 고갯길에서는 안동호의 너른 품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다시 35번 국도를 타고 북으로 오르면 분천리에서 오른쪽으로 빠지자 마자 도산서원이다. 도산서원은 지갑에서 1,000원짜리 지폐를 하난 꺼내 들고 실제와 비교해가며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서원 문턱을 넘으면 농운정사, 하고직사, 도산서당, 동재, 서재를 거쳐 전교당에 이른다. 전교당에 걸린 ‘도산서원’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다. 마당 한복판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심었다는 그 말 많던 일본소나무 ‘금송’이 제법 굵어진 둥치로 잘 자라고 있다.

도산서원에서 나와 구불구불 고갯길을 넘어가면 퇴계의 종택과 묘소가 있는 토계리다. 이 길을 타고 좀 더 달리면 ‘퇴계 녀던길’로 넘어가는 길목인 원천리 불미골. 저항시인 이육사가 태어난 곳이다.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먼 데 하늘 꿈꾸며/알알이 들어와 박혀’ 청포도가 익는다는 그의 고향이다.

마을 한쪽에 이육사문학관이 조성됐다. 이육사는 퇴계의 14대손. 그의 올곧은 선비정신에는 이미 퇴계가 녹아들어 있었다. 문학관 앞 밭들 한가운데 있는 이육사 생가 터에는 청포도 시비가 자리하고 있다. 이육사문학관 www.264.or.kr (054)851-6593

안동=글ㆍ사진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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