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늦은 밤 택시를 타고 돌아가면 걱정이 된다. 한창 젊었을 때는 경계심도 더 컸던 터라 친구를 배웅하며 차 번호를 꼭 적었다. 한 번은 문득, '내가 번호 적는 걸 택시기사가 알아야 효과가 있지' 싶어 택시 앞에 가서 보란 듯 번호를 적었다. 기분 나쁘다고 내내 택시기사가 화냈다는 말을 나중에 전해 듣고 퍽 죄송했다.
그분 개인을 모욕할 뜻은 전혀 없었는데. 그렇다고 택시기사 일반을 못 믿는 것도 천만에 아니다. 알지 못할 세상이 무서웠을 뿐이다. 위험한 사람이 승객으로 가장할 것을 택시기사가 경계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밤에 택시를 타면 이따금 라디오 전파가 지직거리고, "안암동 로터리, 10분 이내 가능한 기사님"을 찾는 여자 아나운서 목소리가 나른히 들리곤 한다. 끊어질 듯 이어지며 누군가 차 번호를 대고, 동료에게 농 섞인 인사를 건네는 잠긴 목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밤거리를 떠다니는 택시기사의 고립감을 눅여줄 그 라디오 소리를 들으면 내 마음도 편해진다.
지난 새벽, 24시간 김밥집 앞을 걷고 있을 때였다. 알루미늄 호일로 싼 김밥 하나를 든 남자가 나오더니 택시 운전석에 올라 어둠 속으로 휑하니 멀어져 갔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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