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자민당 정조회장은 1일 일본 핵 무장 논의의 필요성을 또다시 강조했다. 북한의 핵 실험 발표 직후인 지난달 15일 처음 언급한 이후 네 번째 반복한 주장이다.
핵 무장 논의 주도의 노림수
국내외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나카가와 정조회장이 이처럼 앞장서서 ‘총대’를 메고 있는 데는 몇 가지 노림수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일본의 핵 무장 가능성을 내비침으로써 미국과 중국 등이 북한의 핵 보유 저지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한다는 전략적 측면이다. 또 집권 이후 온건 보수 쪽으로 궤도 수정한 것처럼 보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 대한 지원사격이라는 효과를 노린 것 같다. 간접적으로 아베 총리의 ‘보수 강경성’을 대신 과시해 인기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노림수는 북한의 핵 실험을 기회로 일본의 핵 무장론에 대한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핵 무장은 먼 장래의 과제이기 때문에 기회가 올 때마다 길을 닦아 놓는다는 것이다.
일본 핵 무장론의 역사
일본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니시나 요시오(仁科芳雄ㆍ1980~1951년)는 1940년 군부에 우라늄 폭탄의 연구를 제언하면서 원자폭탄 만들기에 나섰다. 그러나 우라늄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벽에 부딪혀 1945년 6월 연구를 중단했다. 히로시마(廣島)에 미국의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2개월 전의 일이다.
패전 후 미일 안보체제로 편입된 일본에서는 협상 카드로서의 핵 무장론이 종종 등장했다. 1950년대 말 기니 노부스케(岸信介) 총리가 “방위 목적상 핵무장의 필요가 생기면 일본은 핵무장을 한다”는 말을 미국측에 전해 미일 안보조약을 유리한 내용으로 개정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는 64년 일본의 핵 무장을 언급, 미국으로부터 ‘핵 우산’정책을 이끌어냈다
전후 일본 정부는 “방위용 핵 무기는 헌법상 보유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핵 무장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1967년 ‘핵을 보유하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겠다’는 ‘비핵(非核) 3원칙’을 발표한 이후 일본 정부가 핵 무장을 공식적으로 검토한 적은 한번도 없다.
무책임한 핵 무장 논의는 위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익 진영에서는 핵 무장의 필요성을 끈질기게 제기해 왔다. 특히 냉전 해체 후 중국이 급부상하고,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을 선언하자 더욱 목청을 높였다. 시대 상황에 따라 그 명분도 달랐는데, 최근의 핵 무장론은 북한에 대한 위기의식과 미국에 대한 불신감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일본의 보수 강경파들 사이에는 “북한이 일본에 원자탄을 발사했을 경우 미국이 100% 보복 공격을 해 준다는 보장이 없다”는 등 미국에 대한 불신감이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다.
객관적으로 일본의 핵 무장론은 현실성이 없는 논쟁을 위한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언급했듯이 일본은 핵 폭탄을 만들 능력은 충분하지만 이를 실험할 장소가 없는 등 한계가 많기 때문이다. 핵 무장 논의는 미일 안보체제의 근본을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일본 사회가 급격히 우경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책임한 핵 무장 논의는 국민들을 자극해 겉잡을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나카가와 정조회장의 행태는 국내외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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