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상황 인식을 소신으로, 좌충우돌(左衝右突)식 결정을 일관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범죄로 치자면 확신범인 셈이다. 외교안보라인 개편 결과는 이 같은 잘못된 확신, 또는 자기기만의 결정판인 것처럼 보인다.
대체 무엇이 아전인수식 상황 인식이고, 무엇이 좌충우돌이냐는 항변이 나올 법 하다. 몇 가지만 들어본다.
청와대는 늘 왜곡된 여론 보다는 역사를 응시하며 정의를 구현한다는 식이다. 과거사위원회처럼 '나라의 기강과 근간'을 바로 세우는 일에 정권 차원의 역량을 쏟아 붓고 있는 것도 이런 노력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엄정한 태도와는 반대로, 이 정권은 최근 범법자들을 잇따라 법과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부처의 장관으로 임명함으로써 거꾸로 국가 기강을 훼손하는 짓을 자행하고 있다.
양심범이라면 모른다. 하지만 이재정 통일부 장관 내정자나, 앞서 기용된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모두 정치자금법을 위반해 실형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런 식의 좌충우돌,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질 거면 뭣 때문에 '과거와의 전쟁'을 벌이는 건가.
최근 한미관계에 관한 청와대의 설명도 아전인수의 극치를 보여준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 내정자가 "인류 역사상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는 미국일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자,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미국은 한국을 위해 싸우다 3만명이 넘는 전사자를 낸 나라라는 점을 상기했으면 한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 미국측은 외교경로를 통해 송 실장의 발언에 대한 설명까지 요청했다.
외교의 핵심은 의전과 형식이다. 직설법으로 나타내기 어려운 메시지를 의전과 형식으로 치환해 '외교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는 미국이 송 실장의 발언에 대해 설명을 요청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그런데 청와대는 '우리가 설명을 했더니 미국도 납득했다. 문제 없다'는 식이었다. 불편한 관계를 왜 아전인수식으로 눙치는 건가. 이렇게 호도하면 한미관계가 풀리기라도 한다는 건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문제 등 우리측의 북한 핵실험 대응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반응을 분석하는 시각도 제 멋대로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방한 전부터 PSI 문제를 거론하며 신경전을 벌인 사실이 외신 보도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는데도, 청와대는 편리하게 상황을 호도하려고 했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일"이라는 라이스 장관의 말은 청와대의 설명처럼 '우리의 결정과 입장을 지지한다는 얘기'일 가능성이 별로 없다.
오히려 '한국의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우리(미국)가 특정 입장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불편한 속내의 외교적 수사일 가능성이 크다.
노 대통령은 최근 열린우리당 쪽의 신당창당 움직임에 대해 "작은 꾀로 대선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1,000만명을 어떻게 작은 꾀로 움직일 수 있느냐"고 말했다.
마찬가지의 말을 되돌려 주고 싶다. 서천 소가 웃을 만큼 아전인수식인 상황인식과 좌충우돌식 명분을 편리한대로 끌어다 붙인 '코드인사', '독선인사'로 국가의 운명을 가를 엄중한 외교안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겠다는 것인가.
장인철 정치부차장대우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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