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북미중의 6자 회담 재개합의 과정에 ‘우리 정부는 어디 있었나’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이 베이징 현장에 없었던 만큼 우리측 위상과 역할에 대한 궁금증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날 국회 통외통위의 외교부 국감에서도 이 문제는 큰 쟁점이 됐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북미중 3국간 사전협의 과정에서 완전 배제돼 사후에 결과만 통보 받은 것 같지는 않다. 미국, 중국과 사전에 긴밀한 조율이 있었다는 정황이 적지 않다. 우리측은 한중 정상회담 등을 통해 중국을 움직여 북한을 설득하는데 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 중국은 지난달 19일 탕자쉬안 국무위원을 북한에 특사로 파견, 6자 회담 복귀를 설득했다. 탕 특사는 방북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설득하면서 우리쪽이 제공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북한 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강한 제재 입장도 전달됐다. 당근과 채찍 중 당근을 우리가 제공했다는 얘기다.
우리측은 미국에도 북미대화의 필요성을 설득했고, 북측을 끌어내기 위한 우리측 아이디어에 대한 동의도 받아냈다고 한다. 지난 9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서다. 미국은 10월9일 북한의 핵실험 직전 전향적 자세를 취한다는 방침을 세웠는데, 핵실험 이후에도 이 방안을 폐기할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은 탕 특사의 방북내용을 토대로 북미중 3자 수석대표 비밀접촉에 대한 중국측 구상을 지난달 25일 통보 받았다. 미측과 같은 시점이다. 3국의 긴밀한 정보교류가 있었다는 방증이다. 31일 밤 6자회담 재개 합의시점에 정부 고위관계자가 미국 고위인사와 전화통화에서“축하한다(Congratulation)”는 인사를 건넨 것도 이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회담 재개 합의라는 중요한 순간에 ‘왕따’가 된 이유는 뭘까. 우리측의 막후 역할이 그렇게 중대했다면 왜 한국이 참여한 4자 회동이 아닌 3자 회동이 됐을까. 정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이번 3자 회동의 본질은 북미 양자대화”라며 “중국은 의장국으로서 중매를 선 걸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북한이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계좌 동결문제 등 금융제재에 대한 직접적 이해당사자를 미국으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우리측의 참여를 굳이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본 게임인 6자회담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해내느냐에 있다”고 강조했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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