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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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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입력
2006.11.0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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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원제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봐야 할 작품이다. 1920년 영국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아일랜드의 독립투쟁을 그리는 과정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하거나 살이 발라지는 처참한 광경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지는 않는다. 대신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신념을 지닌 두 형제의 열정적인 삶이 비극적으로 엇갈리면서 눈을 찌르고 가슴을 누른다.

영화 도입부는 평화롭다. 들판에서 하키를 즐기는 아일랜드 남성들의 약동하는 혈기와 뜨거운 함성은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곧 닥치는 영국군의 위협과 살육이 화면을 잿빛으로 뒤바꾼다. 독립 투쟁과 보복의 연쇄작용은 런던으로 떠나려던 전도유망한 의사 데이미언(킬리언 머피)의 발목까지 붙잡는다. “조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형 테디(페드레익 딜레이니)와 마을 사람들의 충고를 받아들인 그는 아일랜드공화군(IRAㆍIrish Republican Army)에 입대하며 인생항로를 바꾼다.

독립이라는 절대 명제에 미래를 저당 잡힌 데이미언은 여러 역경과 치열한 사상 논쟁을 거치며 단단하고 예리한 투사로 거듭난다. 그 과정에 회의도 있다. 그는 함께 자라난 동네 청년을 밀고죄로 단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조국이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는 걸까” 고뇌하던 그는 결국 원칙론자가 되어 아일랜드의 일부 독립과 자치를 허용한 영국과의 협상안을 둘러싸고 현실론을 주장하는 형과 맞선다.

영화는 망원렌즈처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조망하면서도 현미경처럼 역사의 세세한 부분까지 들춰본다. 혁명을 향한 이상과 현실 인식 사이의 어쩔 수 없는 불협화음, 하나님의 권능을 말하면서도 정치적 영향력 유지를 위해 애쓰는 가톨릭 사제의 모습 등을 과장되지 않게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보리밭…> 은 역사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아일랜드의 상황은 지금의 이라크전과 다르지 않다. 과거를 통해 현재의 모순을 비판하고 싶었다”는 로치의 황금종려상 수상 소감에 걸맞게 영화는 역사의 얄궂은 반복과 이에 대한 비판을 오버랩 시킨다. 나아가 로치는 ‘블루칼라의 시인’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이데올로기의 왼편에 서서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질서의 부조리를 꼬집는다.

영화의 메시지는 다음 대사로 압축된다. “무엇을 반대하기는 쉽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어렵다.” 모순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같은 길을 걷다 서로 총부리를 겨눌 수 밖에 없었던 형제의 비극을 온전히 전달해주는 말이다. 제목은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는 민족의 아픔을 노래한 아일랜드 시인 로버트 D. 조이스의 동명 시에서 따왔다. 2일 개봉, 15세.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한 영화관 하이퍼텍나다에서는 <켄 로치 특별전> 이 9일까지 열린다. 초기작 <케시 컴 홈> 을 비롯해 <하층민들> <랜드 앤 프리덤> <레이닝 스톤> 등 로치의 대표작 14편이 상영된다. 10~26일에는 부산 시네마테크부산으로 자리를 옮긴다. (02)766-3390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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