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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우정편지] 시인 이승하가 시인 남진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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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우정편지] 시인 이승하가 시인 남진우에게

입력
2006.11.0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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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우 남진우에게.

자네가 서울예대 전임으로 있다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전임으로 전직을 했을 때, 축하의 전화도 해주지 못하였네. 한동안 자네와 내 이름이 함께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고 하는데, 온갖 구설 가운데 진실은 별로 없어 귓등으로 흘려버렸었지. 분명한 것은 외우(畏友)라는 호칭에 담겨 있는 자네에 대한 나의 존경심일세.

우리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79학번 동기지. 나는 입학하자마자 심신이 안 좋아져 휴학을 했네. 80학번과 허물없이 지내고 싶어 나는 1년을 쉬고 복학했음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다녔지. 그래서 4년 내내 자네와 나는 강의실에서 만날 일이 없었고, 이상하게도 재학 중에는 얘기 한번 나눠보지 못했네. 나는 자네가 동기임을 알고 있었지만 자네는 나를 1년 후배로 생각하고 있었을 테지.

아, 대학에 들어오기 전, 청소년 대상 문예지 <학원> 의 시 부문 장원을 한 자네는 그 시 1편으로 이미 나의 우상이었네. 자네는 대학 2학년을 마치고 나서 맞이한 겨울방학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됨으로써 일약 천재 문사로 이름을 떨치게 되지.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연습> 이란 긴 제목의 시를 지금도 나는 좔좔 외울 수 있네. 나는 졸업하기 직전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지만 내 생각에, 나는 범재고 자네는 천재였네.

학과 조교 인수ㆍ인계 자리이후 자네는 금방 군에 가야 했지. 그 뒤에 몇 번 만나지는 않았지만 자네 결혼식에 내가 갔던 것, 기억하고 있는지? 그 결혼식장에서 기형도가 <케플렛 가의 축제> 를 영어 가사로 멋들어지게 불렀던 것 또한 기억하고 있는지?

<죽은 시인의 사회> 라는 영화 제목이 실감나는 요즘 우리 시단일세. 시를 쓰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남이 쓴 시를 열심히 읽는 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말일세. 문예지와 시집은 이제 서점에서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최근에 출판 관계자한테 들었네. 문예지에다 간간이 시를 발표하고 시집을 몇 권 낸 적이 있는 우리 같은 사람은 이제 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네와 나는 죽는 날까지 시 없이는 못 사는 시 중독자인 것을. 밤을 홀딱 새며 시를 쓰고, 남이 쓴 시에 매료되어 황홀경에 빠지고, 시를 잘 쓰는 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인 것을.

나는 다음 학기에도 자네의 시집을 텍스트로 삼아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칠 것이네. 자네에 대한, 자네의 시에 대한 내 경외심의 발로라네. 늘 몸 건강히 지내기를 바라네.

2006년 7월 5일 안성에서 승하가.

■ 김다은의 우체통

임용 두고 소문이 오해되어…

지난 7월에 써놓고 여태 부치지 못한 편지라 한다. 이승하 씨가 밝힌 사연인즉, 2004년도 중앙대 문창과 교수 신규채용시 그는 학과장이었다. 지원 서류를 낸 친구 ‘진우’의 면접관 위치에 놓인 것이다. 결과가 정해졌을 때, 두 사람을 두고 구설이 뒤따랐다. 심사제도나 소문의 벽이 두 사람을 서먹하게 만들어버린 것.

고갱과 고호처럼, 예술가들은 서로 흠모하며 싸우기를 되풀이한다. 프랑스의 카뮈와 사르트르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들은 결국 결별했다. 하지만 ‘승하’는 지금도 ‘진우’의 시집을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앞선 천재들처럼 철학이나 가치관의 차이로 결별하려면 시간이 걸리겠다. 제도나 소문이 그들을 결별시키기엔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천재 진우’의 재치 있고 통쾌한 답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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