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프로골프대회 크라이슬러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최경주 선수는 평균 비거리가 274.5야드였다. 1야드는 0.914미터니까, 공을 쳤다하면 평균 거리가 251미터는 나갔다는 말이다. 골프에서는 이렇듯 야드로 길이를 표시한다.
서양의 길이단위에서 1야드는 3피트이고 1피트는 12인치이다. 이 단위에서 가장 작은 인치는 보리알 세 개의 길이에서 왔다고도 하고 엄지손가락 길이라고도 한다. 30센티미터쯤 되는 1피트는 발길이에서, 90센티미터쯤 되는 1야드는 영국 왕의 허리둘레에서 유래했다고 하나 유래가 엇갈린다.
우리나라 길이로는 치가 있다. 열 치면 한 자가 된다. 한 치는 손가락 하나의 굵기를 말하며 한 자는 열 손가락을 쫙 편 너비, 즉 두 뼘에서 나왔다고 한다. 한 자의 길이는 1962년 미터법으로 도량형을 통일하면서 1미터의 33분의 10으로 잡아, 3.0303센티미터로 냈으니 1피트(푸트)와 비슷하다.
● 역사와 생활에서 우러나온 척관법
산업자원부가 내년 7월부터는 척관법에 따른 도량형을 일체 쓰지 못하게 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에 따라 근이나 자 평 되 말 같은 고유의 단위들을 쓰면 벌금을 물게 된다.
정부는 이처럼 도량형 통일을 하는 이유로 미터법으로 통일해야 단위가 일정하다는 것을 꼽았다. 척관법으로는 품목마다 무게가 일정치 않다는 문제점을 들기도 했다. 고기는 한 근이 600그램이지만 채소는 400그램이라는 예를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열 푼이 한 돈, 열 돈이 한 냥, 열 냥이 한 근이 되는 척관법에서 고기만 열여섯냥을 한 근으로 쳐서 생기는 차이이다. 채소는 한 근에 375그램이나 미터법이 도입되면서 상인들이 미터법상 단순한 수치로 통일하면서 나온 혼란일 것이다.
같은 이름이라도 무게가 다른 것은 척관법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양에서 쓰는 야드 파운드법도 그렇다. 1배럴은 미국에서 발효주를 말할 때는 117.34리터이지만 석유를 말할 때는 158.97리터이다. 팔리는 통 크기에 따라 굳어진 것이다. 한 온스도 실이냐 금이냐에 따라 무게가 다르다.
한국의 척관법이나 서양의 야드 파운드법이나 일상생활에서 나온 것이니 처음부터 그 무게나 길이가 정확했던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영국에서도 15세기부터 1872년까지 도량형을 통일하는 과정이 계속됐다.
비록 무게나 넓이 길이는 미터법에 따라 일정치로 통일을 했지만 야드 파운드 단위를 계속 쓰는 것은 생활속에서 나온 단위라서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 평은 가로 세로 여섯 자의 땅을 말하니 어른 한 사람이 편하게 지낼 공간이다. 땅은 평으로 재지만 논이나 밭은 마지기로도 따진다. 마지기란 말지기, 즉 한 말들이 곡식을 심어서 키울 수 있는 땅이다. 그 동네가 비옥하냐 아니냐에 따라서 100평에서 300평까지 달라진다.
면적으로 생각하면 이상해도 그곳에서 나는 소출로 가늠하는 셈이니 논밭의 쓸모를 비교하는 데는 더 정확한 단위가 된다. 한 되들이 곡식을 심을 땅은 되지기, 한 섬들이 곡식을 심을 땅은 섬지기라고 불렀다.
한 줌들이 곡식이 한 홉이니 열 홉이 한 되이고 열 되가 한 말이 된다. 열 말이 한 섬이다. 이처럼 전통의 척관법에는 일상생활에서 우러나온 고유의 역사와 문화가 숨쉬고 있으니 그 양을 가늠하기가 더 쉽다.
그러니 이것이 현대 사회의 거래에서 혼선을 불러일으킨다면 홉 되 말 섬과 푼 양 근 관을 일정한 미터법의 값으로 통일해주고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을 단속해야 이치에 맞다.
● 외국 단위는 쓰고 우리 것만 못 쓰나
산자부는 이번 용어 통일을 하면서도 골프나 볼링에서 사용되는 야드나 인치 등은 그대로 두겠다고 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도량형은 관례를 인정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옷감을 재는 데 흔히 쓰는 인치나 야드도 고치지 못할 것이며 석유를 재는 데 쓰는 배럴도 손대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에서 쓰는 야드 파운드 도량형 체계는 고스란히 쓰는 대신 우리나라 전통에서 나온 척관법만 단속하겠다는 것이니 이 나라가 뉘 나라인가!
서화숙 논설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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