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미중 3자 회동에서 6자회담 조기 재개에 합의한 것은 이러한 합의가 미국이 유지해온 기본원칙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처음부터 북한의 조건 없는 6자회담 복귀를 주장해 왔는데 그러한 미국의 입장이 3자 회동에서 상당 부분 관철됐다고 보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3자 회동의 결과에서는 금융제재 해제 등 북한이 그 동안 6자회담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해온 부분이 크게 부각돼 있지 않다. 6자회담 재개에 먼저 원칙적으로 합의한 뒤 모든 내용을 6자회담의 틀 속에서 논의한다는 미국의 원칙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진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새롭게 강조한 바 있다. 3자 회동에 참가했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이와 관련, 북한이 3자 회동에서 핵 포기 약속을 재확인하는 언급을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북한의 진지성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겠다는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6자회담 재개에 미온적이라는 인상을 줄 경우에는 오히려 국제사회의 부정적 여론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도 미국은 고려했다고 봐야 한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북한 제재 결의 이행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6자회담 자체를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또 3자 회동을 중재한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서라도 미국은 전향적 태도를 보여야 할 처지에 있다. 중국은 제재 국면에서나, 또는 대화 국면에서나 북한 핵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이 최근 북한 핵 위기 고조 과정에서 여실히 확인된 바 있다. 미국으로서는 어떤 경우에도 중국의 공조를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이 6자회담에 나선다는 것은 내부적으로는 북한의 주된 관심사인 금융제재 문제에 대해 모종의 결론을 내렸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6자회담이 재개되더라도 북한이 금융제재 해제 문제를 집요하게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회담의 계속을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금융제재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6자회담이 진행되는 어느 시점에 북한에 대한 제재 철회나 완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미국이 보장했으리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3자 회동에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확대 여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또 11ㆍ7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으로부터 북미 양자대화에 나서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조지 W 부시 행정부로서는 6자회담의 조기 재개가 이러한 공세를 무마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부시 행정부는 나아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제재와 대화를 병행한 정책의 성공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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