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최대 과제 중 하나인 교육기본법 개정 작업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국회 심의에서는 법 개정보다는 초ㆍ중학교 학생들의 ‘이지메(집단 따돌림) 자살’사태와 입시 위주의 파행 수업에 의한 고교 비인기 필수과목 미이수 사태가 초점이 되는 등 학교 현장의 문제들이 최대 논점으로 떠올랐다.
아베 총리는 30일 시작된 교육기본법 중의원특별위원회에서 최근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한 두 사태에 대해 집중 질문을 받았다. 그는“교육기본법 개정에 앞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야당 의원들의 비판에 밀려 불상사를 은폐하고 방치한 지방 교육위원회의 잘못을 시인하기도 했다. 이번 국회에서 법 통과를 노리고 있는 아베 총리로서는 생각도 못했던 복병을 만난 셈이다.
길게 보면 아베 총리에게 악재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베 총리가 내걸고 있는 교육개혁은 교육기본법 개정 이외에도 학생들의 학력향상과 외부에 의한 학교평가 및 교사 평가제도 도입 등 공교육 재생을 위한 학교 개혁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국회 답변에서 두 사태를 계기로 지방 교육위원회에의 국가 관여를 강화하겠다고 밝히는 등 정부 개입에 의한 ‘아베식 교육개혁’을 자연스럽게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두 사태는 일본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최근 중학교 2학년 남녀 학생이 차례로 자살했다. 이지메에 의한 자살임을 알 수 있는 유서를 남겼다. 지난해 9월 자살한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 남긴 이지메를 호소한 유서가 공개된 직후 이어진 사건들이어서 충격이 매우 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살한 학생들의 생전의 호소를 학교와 교육위원회가 철저하게 외면했고, 심지어 교사가 학생에 대한 이지메를 주도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필수과목 미이수 사태는 다수의 일선 고교가 입시 준비를 이유로 시험에 포함되지 않는 세계사 등 비인기 필수과목을 가르치지 않았던 실태가 드러난 것이다. 일부 공립고교에서 처음으로 실태가 드러났지만 일본 대부분의 고교에서도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고교 교장이 이에 대해 사과한 후 이틀 만에 자살하기도 했다.
일본 패전 후 제정된 교육기본법은 일본에서 교육헌법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전후 체제에서의 탈피를 주장하며 ‘애국심’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법을 고치려고 한다. 이번 사태들은 교육개혁이 애국심 논쟁이 아니라 잘못된 교육현장의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국민들이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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