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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배반적 부동산 정책

입력
2006.10.31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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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의 경솔한 발언이 촉발한 부동산 시장의 혼란이 심각한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집값 폭등세가 검단신도시를 넘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전역으로 들불처럼 확산되는 양상이다. 10월 한 달간 오른 서울지역 집값이 이전 5개월동안의 상승 폭에 육박할 정도로 기세가 무섭다.

'무조건 사자' 라는 과열된 분위기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부동산 전문가들이 지금이라도 집을 사라고 권유하는 마당이니 불길이 잡힐 리 없다. 무심코 버린 불씨가 온 산을 태워버리듯 장관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가 재앙을 낳았다.

부동산 시장이 이렇게 투기 열기에 빠져드는 이유도 참여정부가 심어준 학습효과 때문이다. 2003년 10ㆍ29 대책을 시작으로 토지공개념 이후 가장 강력한 투기 대책들을 쏟아냈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오히려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격이 국민 의식 속에 잠들어 있던 부동산 불패신화를 살려내는 치명적 결과만 낳았다.

한 달 사이에 수 억원씩 오르는 집값을 바라보면서 국민들은 심한 박탈감과 동시에 '역시 믿을 것은 부동산'이라는 굳은 믿음을 갖게 됐다. 부동산 하나만 잘 고르면 평생 일해도 벌기 어려운 돈을 일거에 벌 수 있으니 온 국민이 부동산 투자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 되살려 낸 부동산 불패 신화

참여정부의 실책과 무능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부동산 정책이 안겨준 배신의 응어리는 정말 용서 받기 어렵다. 입만 열면 서민을 보호하고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정권이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절반을 이루는 무주택자는 너무나 올라버린 집값 때문에 내 집 마련의 꿈은 영원히 포기해야 한다. 주택 소유 여부는 이제 사회적 신분까지 결정하는 상황이다.

"부동산 투기의 시대는 끝났다", "강남이 불패면 대통령도 불패다", "헌법만큼 고치기 어려운 부동산 정책을 만들겠다"와 같은 허황된 호언장담은 배신감을 더욱 깊게 했다.

계속된 정책 실패는 정부가 더 이상 부동산을 잡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시장에 심어 주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특히 주무 장관이 오히려 투기를 부추기는 상황까지 벌어졌으니 정책의 신뢰성 뿐 아니라 정당성마저 잃어 버렸다.

따라서 지금은 정부가 어떠한 대책을 내놓더라도 부동산 시장을 진화하기 어렵게 됐다. 이미 세금과 규제와 같은 강경책들이 실패했기 때문에 새로 내놓을 대책도 마땅치 않다.

부동산 시장은 이미 버블상태에 있다. 지금의 부동산 폭등세는 분명히 비정상적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기 때문에 앞으로 집값이 뛸 가능성이 높다는 기대가 팽배해지면서 가수요를 몰리고 있는 것이다.

검단 신도시 주변의 작은 아파트들이 미분양 상태에 있다가 신도시 발표로 모두 팔린 사실은 그런 가수요를 잘 보여준다. 따라서 정부가 또 다시 어설픈 대책을 내놓는다면 시장 불안을 더욱 부추길 위험성이 있다. 오히려 시장이 스스로 안정을 찾아가도록 기다릴 필요도 있다.

● 부동산시장은 이미 버블상태

물론 부동산 버블이 스스로 터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주택담보 대출이 이미 200조원을 돌파한 상황에서 부동산 버블이 터질 경우 한국경제는 또 다시 위기에 빠져들 것이다. 한번 오른 부동산 가격은 좀처럼 내리지 않는 것이 속성이다. 따라서 폭등세를 방치할 수는 없다.

지금 시급한 것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 회복이다. 정부는 무엇보다 정책 실패를 겸허히 인정하고 부동산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시장원리와 어긋나는 정책들은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시장과 싸워서 이기는 정부는 없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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