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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적당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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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적당주의

입력
2006.10.31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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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주의(適當主義)는 보통 좋은 뜻으로 쓰이는 말은 아니지만, 그 의미에 대해 찬반 논란이 있다. 양쪽 의견을 모두 들어보자.

"공동 생활터 아파트에서 법적으로 애완동물을 못 키우게 되었음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애완견을 키우거나 산보시킬 때에는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게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라종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은 어느 글에서 자신이 사는 이촌동 아파트 엘리베이터 내부에 붙여놓은 위 글을 소개하면서, 이를 '적당주의'라고 비판했다. 법으로는 아파트에서 애완견을 못 키우게 한다면서도 주의를 바란다는 문구는 적당히 법을 둘러대면서 주민들로부터 관리 소홀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면하려는 관리자의 얄팍한 소행이 아니냐는 것이다.

● 소용돌이 한국사회의 업보

반면 언론인 오동환씨는 '적당하다'는 말은 '꼭 알맞다''적합(適合)하다''합당(合當)하다'는 뜻이라며 일부 사전엔 '요령있게 얼버무린다'는 뜻을 추가해 놓았지만 전적으로 잘못이라고 했다. 그는 "적당주의란 합리주의다. 적당주의란 타당주의요 온당주의며 지당주의요 합당주의다.

결코 대충대충주의가 아니고 건성건성주의도 아니며 대강대강주의도 아니고 얼렁뚱땅주의도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제일의 덕목(德目)으로 삼아야 할 주의가 바로 적당주의다"라고 역설했다.

적당주의의 원래 뜻은 합리주의일망정, 이미 얼렁뚱땅주의의 때가 잔뜩 묻은 적당주의를 되살려내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때가 묻은 용법이라도 과연 적당주의가 나쁘기만 한 건지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예컨대, 이촌동 아파트 관리자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아파트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관리자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떤 입주자가 애완동물을 키우면 안 된다는 규칙을 어기면서 고집을 피울 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법적으로 대응해야 하나? 물론 이 문제를 전체 아파트 관리소 차원에서 대응하면 해결할 수 있겠지만, 아파트 관리소는 보통 그런 종류의 책임을 말단 관리자에게 떠넘기기 마련이다. 관리자가 그런 입주자에게 취할 수 있는 건 애완동물을 키우더라도 제발 이웃에 방해는 되지 않게 해 달라는 호소다.

규칙 적용이 엄격한 일부 서양 사회에선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알고 보면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이 그런 '적당주의' 방식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이른바 '준법투쟁'이라는 희한한 용어도 나오는 것이다. 우리도 서양식으로 엄격하게 하면 좋겠지만, 그게 영 쉽지 않다. 역사적 굴곡과 질곡이 너무 심한 탓이다.

우리는 한국 근현대사를 가리켜 흔히 '격동의 세월'이라고 부르지만, '격동'이라는 말론 모자란다. 그야말로 소용돌이 세월이었다. 소용돌이에 휘말린 한건주의ㆍ한탕주의ㆍ기회주의가 만연했다.

그 누구건 권위와 신뢰를 축적할 만한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일반 대중의 사회지도층에 대한 신뢰도는 겨우 10%대에 머무르고 있으며, 법(法)에 대한 신뢰도도 바닥을 헤매고 있다.

● 신뢰 없는 사회의 갈등 해소책인가

역사의 업보로 그리 된 걸 어쩌겠는가. 앞으로 사회적 신뢰를 키우기 위해 애를 써야겠지만, 그때까지의 과도기적 상황에서 적당주의는 불가피한 면이 있는 것 같다. 특히 갈등 해소를 위해선 꼭 필요한 행태적 이념이 아닌가 싶다.

싸움판에 대고 우리가 곧잘 하거나 듣는 말이 "적당히 싸워라"다. 누가 옳고 그른지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릴 수 있다면, 그건 결코 해선 안될 말이겠지만 그런 싸움은 드물다.

대개 양쪽이 각각 40~60%의 정당성을 갖고 있는 4ㆍ6제 또는 5ㆍ5제 싸움이다. 그럼에도 양쪽 모두 자신의 정당성이 100%인 10ㆍ0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판단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당히 싸워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 승자 독식을 거부하는 평화주의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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