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간판만 걸어놓고 사람은 없고 동네 사람들끼리 말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동네와 가게들이 바뀌고 있더군요. 우리도 (아트클립 여는 날이) 기다려지는데 애들은 얼마나 기다렸겠어요.”(꼬치열전 주인)
“(문화활동을 한다니) 모두 의아해 했지요. 하지만 차츰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웃는 언니들 덕에 동네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습니다. 그런데 떠난다니 아쉽네요.”(월드마트 주인)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4동 샘터길. 가파른 오르막 양 옆으로 다세대 주택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차 한대가 겨우 빠져나갈 이 골목이 이 곳 아이들에게는 유일한 놀이터다. 놀다가 차가 오면 피하고 또 노는 동작은 이제 컨베이어 벨트처럼 기계적이 됐다.
60년대 말 성남시가 형성될 때의 20평대 주택들이 키만 커진 채 남아 있는 이 곳은 문화의 소외지역이다. 맞벌이 부부가 많다 보니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도 혼자서 밥하고 동생들 챙겨 먹여야 한다. 문화라는 단어는 이들에게는 사치품이다.
그런 이 곳에 작은 바람이 불었다. 성남문화재단이 공모해 뽑은 미술인들이 동네 곳곳을 예술작품으로 바꾸어놓으면서 주민들의 마음 벽에도 초록과 노랑의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샘터길 입구에서 좌판을 하던 할머니는 1주일 동안 막걸리를 사 들고 와 넋두리를 들어주던 송부영 작가에게 멋진 좌판 제작을 부탁했고 지하에 있는 홈런만화가게 주인은 김지영 작가에게 만화가게임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일러스트레이션을 부탁했다.
민속주점 아저씨는 실내에 김홍도 벽화가 그려지자 입이 함박 만하게 벌어졌고 컴마을게임방 주인도 주차금지 표지판을 예쁘게 만들어주자 “이제 누가 여기에 불법주차를 하겠냐”며 좋아했다.
모두들 처음에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지만 강요하지 않고 묵묵히 일해나가는 모습에 하나, 둘 친구가 됐다. 아지트 격인 아트클립 사무실에서 그림을 배우던 아이들도 열성적인 언니 오빠들의 열렬한 팬이 됐음은 물론이다.
종로방앗간 김광선(38)씨는 “처음에 의심도 많이 했는데 작가분들이나 봉사자들이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성남문화재단의 목표는 예술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었다. 팍팍한 세상살이에 나와 남을 사랑하기 힘겨워 하는 사람들에게 그림으로, 동판조각으로, 벽화로, 평상으로 서로의 체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바람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평상은 20개를 설치했는데 주문이 폭주해 30여개를 추가 설치할 예정이고 집 앞에 풍경처럼 달아놓도록 한 동판은 재료가 모자라 사과하느라 바빴다. 인테리어 역시 손이 모자라 미안한 마음 뿐이다.
금빛초등학교 등 인근도 민예총, 한국토지공사의 도움으로 벽화작업이 진행중이다.
성남문화재단 박승현 문화기획부장은 “골목을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돈과 사랑은 서로 상관없다는 것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것이 목표”라며 “비록 작가들이나 재단은 철수하지만 요청이 들어오면 도움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업에는 인건비 등을 포함해 모두 8,000만원이 들어갔다.
사무실 문을 닫은 날 쪽지 편지가 입구에 가득 꽂힌 걸 보고 그 동안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졌다는 재단 관계자들은 내년에는 신구시가지에 각각 1개 마을을 택해 문화 싹틔우기에 나설 예정이다.
이범구기자 gogu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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